은사님께 드리는 글월
첫 수업을 시작하는 음악 소리가 울린지 한참이 지났지만, 꼬마 아가씨 서너명은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교실뒤 탱자나무 울타리 옆에서,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기악부를 만들어 산골 아이들에게 관현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던, 강자 태자 업자 선생님이 진해 덕산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신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악을 했던 여학생 몇이 서러움에 울고 있었던 거지요. 눈물을 닦고 뒤늦게 교실로 들어가니 담임이신 김자 명자 호자 선생님은 회초리로 벌하시며 복도에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세워 두셨습니다. 가끔 돌아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이 자리를 함께한 여러분들도 크던 작던 많은 추억을 은사님과 함께 하고 계실 것입니다.
봄입니다.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피어난 봄 꽃은 고통의 시간을 이겨냈기에 아름답고 화사하게 꽃을 피워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지천으로 피어난 온갖 봄꽃은 꼬맹이들 마음에 새겨져 어른이 된 지금 서정과 감성적인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지요. 더불어 저희들이 봄이었던 시절 담임을 하셨던 은사님들을 통해 지식의 기초와 꿈을 키웠던 것입니다. 때로는 칭찬으로 또 때로는 꾸중으로, 봄날의 여린 풀잎 같았던 어린 꼬맹이들의 지적체계의 기틀을 잡아 주셨고, 인격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을 때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친구들이 교정에서 은사님과의 많은 추억을 간직한체 육년이 지나고,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와, 더 이상 배움의 길로 나아가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어렵게 주경야독한 아이들이 있었으나 어른이 된 지금은 모두가,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사회를 이끌어 가는 구성원으로서 모자람이 없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은사님의 그 큰 가르침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희들이 제대로 된 사람구실을 하며 살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큰 은혜에 고개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은사님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 후회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유년의 철없던 그 시절 은사님의 가르침을 왜 열심히 배우지 않았던지 지금에 와서야 모든게 회환으로 남습니다. 그런 후회 때문인지 저는 지금도 끝임없이 공부하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책상위에는 다음에 볼 책들이 수북히 쌓여 있어야만 안심이 되곤 합니다. 논어 제1장 학이편에 나오는 공자님의 '學而時習之면,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를 좀더 일찍 깨우쳤더라면 지금보다 조금 더 완성된 인격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지적인 것보다 심성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착하게 살고자 노력해 봅니다. 살다보면 간혹 문화적인 차이와 이해 관계에 얽혀서 충돌이 있을땐 맞서기 보다는, 어린시절 은사님이 가끔 말씀하시던 "뭣이 무서워서 피하나 뭐뭐해서서 피하지,라는 구절을 되뇌이며 감정을 여미곤 합니다.
은사님,
오늘 이렇게 은사님들을 모시고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고인이 되신 분들과 연락이 닺지않아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특히 육학년을 담임하셨던 고 이자 칠자 경자 되시는 은사님의 모습이 뵈지않아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좀 더 일찍 이런 자리를 마련했더라면 한 분도 뵙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이 모두가 제자들의 부덕의 소치가 아닐까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은사님 고려시대 정치가이자 학자이신 역동 우탁선생의 시조 한 수가 생각나 읍조려 볼까합니다.
제목이 세월의 듯없음을 한탄하는'한손에 가시 쥐고' 인데 한 번 들어 보십시요.
한손에 가시 쥐고 또 한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라는, 우탁선생의 류수와 같이 지나버린 세월과 늙음을 한탄하는 시조처럼 어느새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제자들이 나이 오십이 되었습니다. 이루어 놓은 것도 없는데 세월에 등 떠밀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은사님을 받들며 친구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에 저희들도 당황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은사님 이제부터는 친구처럼, 혹시 바람결에라도 제자들이 잘못한 소식이 들려오면 수화기 들어서 따뜻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꾸짖고 다독여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충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건강하시고 댁내 행운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소원하겠습니다.
또 저희 제자들, 가르침을 주셨던 큰 은혜 잊지않고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으며 진정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은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