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오늘 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 되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우리 부부는 가게를 열었다. 직원들은 모두 고향으로 보내고 오늘도 바쁘게 보내고 있다. 시골 노인네는 다른 집 아들들은 일찍감치 고향으로 와서 부모님과 정담을 나누기도 농사 지어놓은 곳을 돌아보며 풍요를 함께 노래 하는데 우리 자식은 언제나 오려나 하고 내일이나 되어야 올걸 뻔히 아시면서도 몇 번이나 동구 밖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큰댁이 대구에 있으니 조상님 차례를 지내고 시골가면 어느새 오후가 된다. 어머님이 건강하실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세상을 잃어버린 뒤에는 이런 것도 죄스럽기만 하다. 내가 부모가 되어 내 아이들이 제때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몹시도 기다리며 조갑증을 내면서도 부모님의 그런 마음을 일찍 헤아리지도 못했다. 이제 우리 아이들도 대학생이 되고 시간이 조금더 흐르면 나를 떠나갈 것이다. 지금의 어른들을 보면 머지않은 시간의 나를 보는것 같아 더 아리고 슬프다. 마침 추석에 휴가나온 큰아이도 할머니 뵈러 갈 수 있어 기쁘다. 비록 손자를 기억하지는 못하시지만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건 막연하게 알고 계신것 같다. 아이들도 할머니의 병세를 어느 정도는 아는지라 안타까워 하고 있다. 장성한 손자를 보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실것을 참 안타깝다. 이제는 손자에게 만원짜리 몇 장 슬며시 찔러주시는 것도 잊어 버렸을 할머니...
이번 추석은 이래저래 마음이 착잡하다.
형님댁과 요즘 왕래가 줄었기에 추석이 더 즐겁지가 않다. 형제의 우애가 사라져감을 느끼기에...
아이들이 꼬맹이일 때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우리 형제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요 우애있는 가족이었다.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하나도 틀린게 없다. 어느 때 인가 부터 형님네는 변하기 시작하고 그 틈새에서 우리도 스트래스를 받기 시작하고 부터 형제는 소리는 내지 않지만 원할한 소통을 못하고 있다. 애들이 어릴 때 우리의 한가위는 참 행복했다. 나는 형님을 존경했고 형님은 나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가 말을 아끼고 담을 쌓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슬프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가정을 꾸리면서 각각의 삶을 살아 가면서 형제의 정 보다 자식의 사랑으로 방향 전향을 한 것이다. 피를 나눈 형제이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크기에 형제는 소원해진 것이리라...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더니만...
먼 훗날 우리 아이들도 각각의 가정을 꾸릴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