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옮긴 이. 김현우
알링턴파크에 비가 내리고 있다.
작가는 여자들의 삶을 비라는 우울한 변주곡으로 미리 암시를 주고 있다.
태초에 여자는 위대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생산의 기능을 하였기에 남자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알게 되는 생산의 원초적인 제공자가 남자라는 것과 남자가 돌도끼로 힘을 쓰면서부터 남자에게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여자들은 억울해한다. 그 후 여자는 남자와의 종속관계에서 근대 페미니스트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늘날 남녀평등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오른팔 들어 시위한다.
시대를 앞서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을 거쳐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을 한 보봐리 부인 그리고 니체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루 살로메의 성 삼위일체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여자들은 기억한다.
작가는 중산층으로 형성되어 있는 알링턴파크의 다섯 여자들의 일상을 통해 여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줄리엣은 알링턴파크에 결코 살아서는 안 되는 미래를 열어갈 촉망받았던 인제였지만 알링턴파크에 안주하게 되었고. 메이지는 런던에서 알링턴파크로 오면서 격조가 낮아졌다는 생각을 크리스틴은 알링턴파크를 꿈꾸어 마침내 꿈을 이루었지만 그녀는 남편이 아니었으면이라는 나약함과 동시에 노력의 결과에 만족한다.. 아멘다 역시 알링턴파크에 안주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막상 꿈이 이루어지자 자신의 꿈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당황한다. 솔리는 알링턴파크의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는 방을 외국인들을 들이면서 다른 여성의 삶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면서 욕구를 해소한다.
작가는 여자들이 양육과 가사 노동으로 자아를 상실한 체 일상에 쫓기어 사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친구 들과 쇼핑을 하고 차도 마시며 가끔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도 열지만 그것들 조차도 그녀들을 힘들게 하는 짓이라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여자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이 가정에서 익명의 섬이라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결혼이라는 굴레안에서 자아를 상실하고 살아온 시간들이 무슨 의미인가 되돌아보게끔 한다.
결혼과 동시에 내 모든 것 육신은 물론이고 영혼마저도 남편의 영역하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나를 찾아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
오늘 신문에 가천길병원재단의 이길여 회장의 인터뷰를 보고 느낀 바가 참 많다.
보통의 여자들이 결혼을 해서 가정에 안주하는 것과 달리 이길여 회장은 자기의 꿈을 위해 살아온 너무나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늦은 나의 자아 찾기가 무슨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작가는 그녀들의 엄마가 그랬듯이 그녀들 역시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며 내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작가는 알링턴파크의 여자들을 통해 행복의 지수와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를 묻고 있는 듯하나 내가 보기엔 현제 독자들의 삶의 위치를 물어보고 있는 것 같다.
오래전 작가 앤 타일러의 "종이 시계"를 보면서 하루를 동동 거리며 살아가는 나의 자아를 발견했지만 어쩌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로 하나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자유로운 영혼은 나를 위해 소모하리라 여겨본다.
지구촌의 수많은 여자들의 일상이 알링턴파크의 여자들과 뭐가 다를까 여기며 여자의 꿈이란 결국은 남자의 꿈 안에서 꾸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