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사막
장 마리 귀스타브 르 끌레지오
사막은 태초의 숨결을 간직한 채 원시적인 모습으로 아직도 바람이 일고 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나는 사막은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금단의 대지로 어쩌면 신들의 영역이라 여겨본다. 사하라 사막 그 모레 언덕과 계곡은 그 땅에 살아가는 유목민의 작은 터전일 뿐 누구의 땅도 될 수 없다.
주인공 랄라는 사하라 사막이 끝나는 시테에서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시테는 아프리카 빈민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환경이 열악하다.
랄라의 부모는 사막의 유목민으로 살았던 청색인간의 후예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를 잃었기에 부모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오직 고모를 통해서 듣는 부모의 이야기들이 랄라가 아는 전부인 것이다. 랄라는 가난하지만 고모네 가족들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 행복했다. 랄라가 16살이 되는 어느 날 길 건너 도시에서 부자로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가 랄라를 사기 위해 고모네 찾아온다. 문명의 상징으로 불리는 라디오와 통조림 등 현대문명으로 대표되는 것들을 자루에 담아서 가져왔다. 랄라는 무서워서 하르타니를 찾아가 암석고원에서 순수한 사랑을 나눈다. 그 후에도 중년의 남자는 끈질기게 찾아와서 청혼을 하지만 랄라는 받아들일 수 없어 하르타니에게로 영원히 도망친다. 하르타니 역시 사막 유목민의 후예로 말을 못 하지만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세상위치를 파악할 줄 아는 청년이다. 랄라와 하르타니는 사막으로 도망치지만 실패하고 돌아온다. 사막은 아직은 어린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이야기는 한참을 건너뛰어 랄라가 스페인을 거쳐 프랑스 마르세유 노동 이민자로 살게 된다. 이미 고모가 먼저 마르세유에 도착해서 일자리를 얻어서 살고 있었다. 랄라도 구석진 빈민가의 더러운 호텔에서 청소부로 살아간다. 거지 소년 라디를 통해서 랄라는 문명뒤에 숨겨진 폭력과 죽음 현대문명이 낳은 노예들을 목격하며 현대사회의 욕망을 본다. 많은 이민자들은 현대사회의 또 다른 노예에 불과한 것이다. 랄라는 우연히 어느 사진작가를 만나면서 잡지의 표지모델로 유명해져 스타가 된다. 그러나 돈에 대한 가치가 희박한 랄라는 몇 푼의 돈만 챙기고 언제나 사진사에게 다 주어 버린다. 랄라의 무의식 속에는 언제나 사막으로의 귀환이 꿈틀거린다. 사진 촬영차 사막으로 간 랄라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과 신비로움이 가득했다. 랄라는 마르세유에서의 기억을 뒤로하고 시테를 향해 배를 타고 사막으로 돌아온다. 늘 나망 아저씨를 찾아갔던 바닷가에 도착한 랄라는 사흘 밤낮을 모래 둔덕에서 잠에 빠진다. 차가운 모래의 기운을 느끼면서 깨어난 랄라는 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진통을 느낀다. 파도가 밀려와 철석이는 리듬과도 같이 엄청난 진통에 아무도 없이 무화과나무 밑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가르쳐 주지 않아도 똑 같이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고통을 이겨낸다. 긴 고통이 끝나는 시간 청색인간의 후예 하와랄라가 태어난다. 랄라는 아기를 바닷가로 안고 가 바닷물로 깨끗이 씻기고 비로소 사막의 모태에 안긴다.
작가는 랄라와 부모의 단절을 누리를 통해 사막의 유목민 청색인간의 후예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병행기재되는 누리의 청색인간들의 이야기는, 사막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현대문명의 상징 총과 힘으로 파괴하고 몰아내려 한다. 족장 마엘 아이닌은 부족들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서 끝없는 사막의 계곡을 유랑한다. 병든 노약자와 사람들은 길 위에서 죽어가고 종내는 마지막 남은 사람들 마저도 기독교인들의 총에 죽어간다. 살아남은 몇몇 사람과 누르는 사막 깊숙한 곳으로 돌아간다. 누르는 랄라의 아버지였다. 어머니 하와와 하룻밤을 보냈지만 누르는 떠나고 화와는 랄라를 낳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막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유목민들의 문화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살아져 버린 것을 작가는 뿌리 찾기와 같은 형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고고학자나 작가의 붓끝으로 재현되는, 사라졌던 무수한 문화들이 원시의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문명의 다양함과 삶의 모습들은 글쓰기의 위대함을 새삼 느껴 보기도 한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조서'와는 많이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를 보면서 작가의 지칠 줄 모르는 여행이 세상을 바라보는 큰 마음을 가지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작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허약성을 질타적인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충고하며 원시로의 귀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막,
그곳은 죽은과 생명을 동시에 간직한 땅이다. 바람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발자국을 지우고 작은 생명들은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웅장한 모래 언덕은 경이로운 자연의 힘일 것이며 인간이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땅일 것이다.
작가의 천재적인 면과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적 해박함이 세계의 많은 독자들을 길을 나서게 하고 있다.
사막은 침묵이며 바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