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세상을 피해서
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쏴하고 바람이 지나간다. 산등성이를 휘감아 도는 바람소리는 정적을 깨는 세상의 유일한 소리마냥 다른 어떤 소리도 잠시는 들을 수 없다. 수북히 쌓인 낙엽 중에서도 아기 손바닥 같은 단풍잎은 빨갛고 노랗게 아직도 어여쁨을 과시하고 있다.
나라에 큰 일이 생겨 세상이 어수선한데 나는 산책을 나섰다. 북한군이 우리 영토인 연평도를 공격해서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불행한 사건이 터졌다. 메스컴에서는 연일 사건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고 분분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안세안게임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2위를 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요즘의 사회상은 참으로 복잡미묘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오늘은 전사한 군인들의 영결식이 있었다. 장성한 아들을 잃은 어미의 절규가 세상을 채우고 있다. 내 아들 같은 꽃다운 청춘들이 가을 낙엽처럼 날아 가고, 분단의 한이 붉은 피가 되어 강산을 적시고 있다. 세상도 슬픔에 잠겨 회색빛으로 암울하다.
한 달중에 넷째 주말은 한가한 주말이다. 그래서 모처럼 수목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시끄러운 세상과는 달리 참나무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에는 바람이 유일한 소리인양 고요와 침묵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바스락 거리는 가랑잎을 밟으며 천천히 능선을 오르고 한가로운 생각속에 빠져본다. 어쩌다 지나치는 사람들 마저도 자연이라 치부하며 수목원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갔다.
수목원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적인 아름다움이야 두말할나위 없지만 인위적인 구성도 아름답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정돈된 정원들이 모여서 하나의 큰 식물원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수많은 손길에 의해서였다. 돌 하나에 작은 풀꽃 하나에도 누군가의 정성이 가득하다. 그래서 잘 가꾸고 다듬어 놓은 수목원은 사철이 아름답다.
사잇길에서 만나는 작은 바람에 대나무가 사각거리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바람이 부는 날은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바람을 피하고 있는 모양이다.
수목원 언저리를 한 바뀌 돌아 갔던 길을 되돌아 온다. 강원도에 눈이 내린다는 소식과 내일 모레부터 추워진다는 기상대의 예보에 주말농장 배추와 무우가 거두어지고 있다.
잠시 세상의 소리를 피해 나선 산책은 맑은 생각들로 채워진다.
바람에 낙엽은 떨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