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비엔나)
2011년 5월 20일
다뉴브강,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
비엔나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라는 음악의 도시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다뉴브강을 타고 흐르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우선 생각난다. 내 짧은 음악적 지식이 아무것도 설명 할 수 없는 음악이 흐르고 예술이 흐르는 도시다. 그저 내가 좋아서 즐겨 듣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음악과 모차르트의 소나타, 베토벤의 웅장한 교향곡 그리고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와 현악 4중주 '숭어'다.
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설렘과 감동은 말할 수 없다. 빈 필하모니의 '신년 음악회'는 내게 꿈이었고 이상이었다. 내가 소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는 없지만 그 언저리에서라도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 싶다.
음악의 도시답게 성 슈테판 성당 광장에서는 여행객을 위한 저녁 음악회 티켓을 파는 사람들이 전통뮤지션의 복장을 하고 판플랫을 들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빈으로 오면서 살롱 음악회 티켓을 이미 예약해 놓았다. 그래서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광장을 둘러보고 성 슈테판 성당을 구경하기도 했다. 광장에서 행위 예술가의 공연을 보며 동전 50센트를 깡통에 넣었더니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더니 우아하고 품위 있는 자세로 내 손등에 키스를 한다. 그래서 난 당신은 참 멋진 예술가라고 말해주었다.
비엔나의 여행을 위해 아침부터 나는 치장을 했다. 저녁 음악회 때 우아하고 예쁜 차림을 해야겠다며 트렁크에 곱게 넣어둔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빈에서 만큼은 여행자의 차림이 아니라 동양에서 온 예쁜 여자가 되고 싶었다. 일행들도 내 원피스 차림이 센스 있다고 칭찬해 주기도 했다. 그 덕에 행위 예술가로부터 나이 많은 내가 키스를 받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오스트리아는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나라다.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두 배에 이르는 4만 불이나 된다. 음악이 흐르는 고풍스러운 도시는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니 어찌 잘 살지 않으랴 싶다. 빈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은 이미 책으로 수없이 쓰였기에 나는 응급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한다. 그래서 주워들은 이야기 말고 내가 본 이야기만 쓰기로 했다. 그것도 시각적이고 감정적인 위주로 써보려고 한다.
광장을 지나 합스부르크의 왕가 쉔부른 궁전을 구경했다.
쉔부른 궁전은 신성로마의 황제를 배출한 왕가이나 현대에 이르러 몰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잘 보전된 궁전을 돌아보며 그 옛날 영광의 날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화려한 왕가의 유물은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품위 있고 고귀한 자태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방마다 쓰임이 달랐던 만큼 디자인과 소품 역시 다르고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어 주인의 성품을 잘 나타내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쌍벽을 이루며 르네상스 이후를 이끌어 온 유럽의 대표적인 왕가였다. 이런 뿌리 깊은 왕가는 1차 대전 이후 모두 몰락하고 말았다. 영국과 다른 몇몇 나라에서는 아직도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전통을 잘 지켜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쉔부른 궁전을 구경하고 나오니 절대 권력의 여왕 마리아 테레제의 슬픈 미소를 본 듯이 마음이 허전했다. 더군다나 여왕의 막내딸 마리 앙투와네트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로 시집가서 민중봉기로 일어난 혁명에 휩싸여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져 간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싶다.
이런 기분도 잠시 비엔나 중세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현대사에서 그들의 자랑 건축가 휀더드 더트 바샤의 건축물을 구경했다. 바샤는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영향을 받아 유연한 곡선의 미학을 구현한 건축가였다. 건물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유치 하리만큼 알록달록한 색상에 직선을 배제한 곡선은 직선의 건축물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유연한 곡선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다 방향을 틀어 또 다른 곡선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볼 수록 재미있고 이야기가 있는 건축물 같아 행복해 보였다. 어쩌면 바샤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의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이란 자고로 행복이 가득해야 한다. 그 행복을 오롯이 담는 곳이 집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바샤는 훌륭한 건축가임에 틀림없다. 바샤가 지은 건물 외부와 내부를 돌아보며 건축의 미학을 배워본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일찌감치 곡선의 미에 눈을 뜬 건축가가 더러 있었나 보다. 우리나라의 부석사 배흘림기둥을 보더라도 그리고 자연친화적이라고 말하지만 안동의 병산서원 만대루의 굽고 휘어진 목제들 역시 곡선의 미학이 주는 아름다움이라 여겨진다.
건축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가 전부이다.
빈에서의 저녁은 현지식 전통요리 호이리게를 먹었다. 돼지고기 안심에다 튀긴 감자와 소금에 절인 양배추 당근 그리고 콩깍지가 나왔다. 특별히 맛있다기보다는 그냥 먹을만했다. 호이리게는 햇포도주와 곁들어 먹는데 백포도주가 나왔다. 포도주라면 레드와인보다는 와이트와인이 무난하게 나와 잘 맞는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동안 악사들은 연주를 하며 몇 푼의 팁을 받는 모양이다. 이왕이면 오스트리아 음악을 해주면 좋을 텐데 우리의 대중가요를 연주해서 즐거움이 반감이 되어 버렸다.
여유롭게 저녁을 먹은 일행은 두 편으로 나누어졌다. 음악회를 가는 팀과 호텔로 바로 들어가는 팀으로, 우리 일행들은 책을 읽는 독서토론회 모임이다 보니 그런 고급문화를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라 음악회를 고대했었다.
빈은 음악의 도시라 음악회가 많이 발달한 도시다. 그래서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살롱음악회가 성행을 이룬다고 한다. 베토벤을 비롯한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같은 대가도 살롱이 키운 천재들이라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들을 음악회는 약 200여 명이 관람할 수 있는 규모의 살롱이었다. 무대와 가까운 A석은 1년 전에 이미 예약이 되어있고 B석은 몇 줄 뒷자리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처럼 불과 하루 전에 예약하는 사람들은 B석 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침부터 기다려온 음악회라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원피스에 보라색 스카프를 두르고 음악회 차림으로 손색이 없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뮤직'으로 시작되어 슈트라우스의 .다뉴브강의 잔물결' 그리고 모짜르트 스트라우스 곡이 반복되며 살롱을 환희로 가득 채웠다. 청중들은 숨을 죽인채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려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왈츠가 연주되면 무희들이 무대로 나와 멋진 왈츠를 추기도 하고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되면 피에로 복장으로 무대로 나온 연기자들이 코믹한 춤으로 청중을 웃기기도 했다. 교향곡을 들을 때의 중후하고 엄숙한 공간이 아니라 실내악의 감미로움과 판타지가 있는 곳이었다. 1부가 끝나고 잠시 티타임에는 청중 모두에게 와인이나 주스가 주어졌다. 우아하게 와인을 들고 살롱 복도에 기대어 소곤대며 품위 있는 모습을 하고 싶지만 저녁을 먹으면서 이미 와인을 두어 잔 했는지라 주스를 들었다.
2부에서도 연주곡에 따라 발레리나가 나오기도 하고 무희가 나와 탱고를 추기도 했다. 음악회는 생각보다 원더풀이었다. 살롱에 열기가 넘치고 청중들의 상기된 얼굴에서 만족했다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비엔나 리사이던스 오케스트라',
우리가 들었던 음악회의 오케스트라였다.
그렇게 1 시간 하고도 30분을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을 싣고 다뉴브강을 유유히 흘러갔다. 웅장하고 우아한 극장을 나오니 밤이 늦었다.
낯선 곳에 와서 이렇듯 우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한다. 이럴 때면 으래 생각나는 건 가족이다.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들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 날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