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햇살이 아름다운 가을 창가에서

하이디_jung 2014. 10. 8. 22:16

 
  가을 햇살이 어르신의 침상 끝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잠시 눈부신 가을 햇살에 잘 익어 가는 빨간 감을 떠올리며 참 좋은 계절이구나 중얼 거린다. 어르신의 이마를 지나 눈, 코, 입 얼굴 가득히 번지는 가을 햇살이 오랜 병원생활로 야윈 육신위로 비타민D가 마치 눈송이처럼 내리고 있는 듯하다. 때 맞추어 열린 창을 통해 불어주는 소슬바람 한 점도 어찌 그리 소중할까.
 젊은 날 무얼 하셨길래 병원에 의탁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시며 대답 없는 아들딸 이름을 부르실까. 벽을 향에 아들 아무개야 엄마한테 오라며 천 번 만 번을 불러 보지만 하얀 벽 그 너머에선 대답이 없다. 영혼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고향도 가시고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들을 향해 달려가고 달려가건만 어느 자식도 병들고 늙은 어미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다. 세월이 변한 것일까, 아님 사람이 변한 것일까, 날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병원에 맡겨야만 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인들 오죽했으랴 싶다.
 어느 날 생을 마무리하시고 세상을 떠나는 어르신을 보면서 인생사 참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고작 몇 십 년 살다 갈 인생살이, 우리는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도 생각해 보고 산다는 것은 무얼까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달리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삶이 다 할 때까지 열심히 살 것이며 선과 덕을 쌓아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노력해 본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공부를 한다. 여태껏 너무 잘 살아온 것에 감사하고, 건강한 울 엄마한테 감사하고 그리고 이제라도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에 감사한다. 좋은 것만 하고 좋은 곳을 다니며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온 것에 새삼 감사하고 감사한다.
 나는 비로소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길목에 서게 되었다. 세상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상이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나 내 인생 후반기를 빛과 소금 같은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남들은 내게 나이 들어 무슨 고생이냐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진정 보람된 삶이 행복하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코 실망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힘든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하루가 정말 힘든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 출근할 때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그래서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굿모닝 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오늘도 하루종일 어르신들과 친구가 되기도 딸이 되기도 하며 보냈다. 주름이 깊이 파이고 늙어 거칠어진 손이지만 아직도 따스함은 식지 않은 손을 나는 쓰다듬으며 어루만져 드린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영글어가는 지금 내 삶도 아름다운 가을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