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둘째 훈이가 취업을 하면서 집을 떠난 지도 어느덧 두어 주가 되어간다. 지난가을 대기업 여러 곳에 지원해 면접까지 갔지만 다 실패하고 말았다. 아이가 전공과는 무관한 마케팅 쪽 일을 너무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일 년을 꼬박 매달려 공부를 했다. 올해 다시 도전을 꿈꾸며 준비하려는데 면접을 본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중소 건축설계사무소였다. 아이는 고민을 참 많이 했다. 물론 자기가 하고 싶은 마케팅과 기획 그리고 건축설계도 함께 할 수 있는 직장이었다.
나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아쉬웠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꿈을 마음껏 펼치기를 너무나 바랬기에 아쉽고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의 근황이 궁금했다. 하여 문자로 안부를 물었더니 어찌 대답이 시큰둥하니 의욕이 없는 답이 왔다. 답을 보니 괜한 노파심일까, 또 걱정이 된다. 보낼 때 길이 아니다 싶을 때는 과감하게 버리라고 말했다. 아직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니 다시 도전해도 늦지 않는다고 용기를 주었다.
대신 건축회사에서 3년을 일하면 건축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니 좋음 점도 있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건축과는 멀어지는데 전공을 살려 건축사 자격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그것 또한 대단한 것이다. 아이의 선택에 있어 아직은 생각이 많지만 시간이 흐르면 달라지겠지.
아이의 부재는 작은 내 집이 고요와 정막이 흐른다. 서울을 자주 오르내리며 집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어도 며칠후면 온다는 기약이 있었다. 이제는 취업하고 집을 떠나 자주 올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아이가 보고 싶다. 그나마 형이 사는 집에 들어가 두 형제가 같이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신입이라 3개월간은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되어서야 퇴근한다고 하니 참 걱정이다. 서울 동대문에서 수원까지 전철로 1시간이나 걸린다는데 집에 도착하면 그의 밤 12시가 다되고 만다. 젊어 고생 사서도 한다지만 요즘 아이들은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하다. 훈이는 지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든 주어진 일에 참 열심히 던 아이다. 직장에서도 그런 모습 보여주길 바라본다. 어디서든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시작은 비록 미미하지만 몇 년 후 훈이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한몫을 단단히 하는 사람으로 우뚝 서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6개월의 시간이 흘러봐야 확실한 길이 보이겠지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면 될 것이다.
아이가 없는 동안 나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이제 시험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꼭 합격해서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보여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