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근무
복도를 따라 환하게 켜져 있는 불빛이 고요를 타고 적막감에 빠져들었다. 병원에서 일한 지도 어언 한 달이 되어 가고 있다. 나는 적응기 주간파트를 끝내고 3교대 근무를 시작했다. 그래서 야간근무 3일째를 맞았다. 처음 하는 밤근무는 상당한 부담이었던 것이 사실이라 견딜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또 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제는 한 달에 적어도 6~7개는 야근을 해야 되는지라 머지않아 내게는 아마 일상이 될 것이다.
하루종일 침상에 누워 계시는 어르신들임에도 저녁 9시만 되면 잠에 빠져든다. 어쩌다 소리 지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어르신이 간혹 계셔도 대체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그렇더라도 방방을 돌며 들여다보고 살펴야 하는 게 우리 임무다. 코 고는 소리, 치매로 어릴 적 사고에 갇혀 엄마를 부르는 늙은 아이의 애절함이 포개지면 그 소리들에 밤은 뒤척인다.
인간은 왜 늙어지면 자신을 잃어버리는 못된 병에 걸려 추한 모습을 남기며 죽어가야 할까.
육신은 늙어 볼품없을지언정 정신은 맑고 깨끗한 체로 자식들에게 추한 모습 보이지 않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날 수는 없을까.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병원에 의탁해 생을 마감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밤 12시,
나는 책을 편다. 책을 읽는 사이사이 rounding은 계속되지만 활자를 따라가는 내 의식은 잠시 노인병동의 눅눅한 냄새를 벗으나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이것도 잠시, 가끔 고요와 침묵을 깨는 불편한 소리는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아직은 초보인 나는 어르신들이 잠결에 뒤척이다 수액을 맞고 있는 주삿바늘이 잘못되지 않을까 어둠 속에서 살펴보고 또 살펴본다. 이렇게 나의 밤은 깊어진다. 야근은 긴장되고 힘들지만 누군가 어르신들의 밤을 지켜야만 하기에 또 누군가가 밤을 불면으로 지새우며 아침을 맞는 것이리라. 그러면서 돌아가는 노인병원의 사이클에 맞춰 우리는 분주히 오갈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 하루가 절절한 하루가 될 것인데 노인병동에선 그 하루가 그날이 그날이다. 그런 모습들에 나는 내 삶을 수정하고 또 수정해 본다. 10년 후,
아님 20년 후,
내 모습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갈 방법을 찾으려 궁리한다.
노인병동의 밤 풍경은 고요와 침묵이지만 때로는 죽음이 만들어 내는 안타까움과 다행이라는 긴 한숨도 있을 것이다. 한 인생의 마무리가 공간을 채우고 있는, 그래서 아무것도 소홀이 할 수 없는 노인병동의 밤근무가 가져다주는 부담감은 육신의 고통과 동시에 의무에 충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여명이 밝아 오고 인계받을 샘들이 들어올 때쯤 시린 눈을 비비며 퇴근을 서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