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술이 필요하다면...
2018년도 한 해가 시작된다 싶더니 어느새 스무날이 지나간다. 요즘 같으면 사는 것도 찰나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직장이 무엇인지, 어떤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영혼의 자유와 육신의 자유는 조금씩 내려놓고 긴장과 조화로움으로 정해진 시간들을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각기 다른 인격체인 동료들과 부딪히지 않고 지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중에서도 버릇없는 사람과의 동료적 관계란 늘 힘들 수밖에 없다. 떳떳지 못한 책임전가, 그리고 자기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처럼 뒤에 숨어 비난하는 사람, 인격적인 것과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집단속에서 개인이기주의가 살아 꿈틀대는 정말 삭막한 환경에서 살아 남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더군다나 여자들만의 집단에서 말 많고 탈 많은데 그 기다 사리분별 못하는 사람의 막말과 버릇없음이 참 힘들 게 하는 것 같다.
병원이란 직장이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참 치사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현실 적응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가면 갈수록 힘들게만 느껴진다. 직장 스트레스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가끔 여기서 멈추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인격미완의 사람은 무시하자고도 생각하면서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나는 또,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돌아본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수도 많이 하고 남들한테 상처를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나 자신한테는 너그러운면서 남들한테는 왜 그러지 못하는지 나 자신도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직장을 계속해서 다니려면 마음자세를 바꿔야 하는데 육십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도 고치지 못한 것을 새삼스레 고쳐질까, 지금의 나로서는 총체적인 난관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직장이 있다는 것은 참 대견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도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반전문직이라고 할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 아니라 자격증이 필요한 직장,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이 대견하고 긍지를 느끼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해 보지만 그런 것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총체적인 난관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녀야 하는 이유도 있다. 첫째는 나의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고, 둘째는 따박따박 나오는 만만치 않은 수입이다. 누가 이 나이에 그런 두툼한 용돈을 쥐어 줄 것이며 무위도식 늙어가는 할머니가 아니라는 자부심이다.
인생은 육십부터 리고 했는데 올해로 육십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좀 더 나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나 자신부터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넉넉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너그러운 배려심을 발휘해 보는 것도 분노와 광기로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지금의 직장생활이 너무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집단에서 무난하게 지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가 뭐라던 그 사람의 자질 문제이지 그런 것들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굳은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냥 웃어주므로 하루가 평화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 여기며, 바보라 불리어도 늘 허허실실 웃어주는 어느 개그맨의 처세술을 떠올리며 그래 내가 웃는다,라고 웃어주자.
올해는 또 어떤 날들로 채워질지, 늘 새로운 날들이 기를 바라면서 경쾌하게 살아보자. 사람을 대하는 처세술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나는 웃어주는 사람이 되어보자.
허허실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