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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보내며

by 하이디_jung 2011. 2. 5.

 

  받아 놓은 날은 금방이라는 우리네 말처럼 긴 연휴가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큰아이를 배웅했다. 길 건너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을 우두커니 바라보니 서운한 마음을 가눌길 없다. 저렇게 혼자서 또 떠나가구나 싶은게 애잔한 마음이 폭풍처럼 밀려든다.

우리가 차를 몰아 동구밖을 지나 다리를 건너고 신작로로 접어들  때까지 지켜 보시던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명절이라고 자식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한꺼번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어머님의 시간들이 이제야 절절히 다가온다. 자식들이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던 그 날 밤이 얼마나 서운하고 긴 밤이셨을까.

아이를 보내고 돌아서는 마음에 비가 내린다.

수없는 이별과 만남을 반복했건만은 아직도 길들여 지지 않은 시간들이다.

지는 해를 앞세우고 자기발전을 위한 학문의 길을 찾아 떠나는 아이의 검은 머리카락 속에 새치 한 가닥 조차도 부모는 한숨이 내려 앉는다.

세계과학지에 실린 논문이라며 책 한 권의 분량을 묶어서 틈틈히 익히고, 흐름을 파악하여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길잡이로 삼으려 한다는데... 원어로 된 논문에는 계산법과 알 수 없는 부호들이 눈앞을 캄캄하게 만든다.

아이의 길이 만만해 보이지가 않기에 물었다.

근데 아이는 재미있다고 한다.

"어휴, 다행이다"

물리가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과제나 논문을 보면서 내 짧은 앎이 생각하는 상상을 초월한 공부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이가 들고 다니는 책을 나는 가끔씩 들춰본다.

인문학에서 어렵다는 철학, 경제라지만 그 어려움이 순수과학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이가 더 안스럽다.

아이는 재미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지금 생각하면 문과쪽을 보낼걸 하고 가끔 후회하기도 한다.

요즘들어 큰아이의 친구들이 대기업에 많이 들어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다 조금은 초조해진다. 그러나 더 높은 비상을 위해 더 배우고 갈고 닦을 수 밖에, 부모는 참고 인내하며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오늘이 또 저물어 간다.

밤이 깊어서야 아이는 작은 둥지에 도착하겠지.

사랑한다고 몇 번을 손을 어루만지고 볼을 쓰다듬어 주며 느꼈던 그 따뜻한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 쯤 아이를 태운 기차는 어둠 속을 가르며 달려 가겠지.

절절한 모정으로,

아이를 위한 기도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