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커튼을 올려보니 자욱한 안개가 새벽을 밀어내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온통 안개로 뒤덮인 골짜기를 따라 걸어 보았다. 어제 들어오면서 본 삼나무가 우거진 도로를 따라가 보니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삼나무가 참 멋있었다. 이런저런 마음으로 한 사람을 생각하며 상념에 빠진 나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S언니가 나의 고요를 깨트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묵은 펜션은 작은 골짜기에 지어져 다른 민가는 한 채도 보이지 않아 조용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돌돌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이른 아침 새소리 간혹 일어나는 작은 바람만이 정적을 일렁이고 있었다.
난 혼자 한 달 쯤 머무르고 싶었다.
아침을 먹고 주인장의 기타 연주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며 잠시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솔샘이 중앙도서관에서 활동할 때 도서관 가을 행사에 참가해서 합창과 중창을 부르고 동화구연도 했던 아득한 그날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때는 내가 참 이뻤는데...
주인장의 이별송을 들으면서 길을 나섰다.
먼저 방아다리 약수를 들렸다. J언니가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방아다리 약수로 올라가는 길을 들어서니 정말 기가 막힐 만큼 아름답고 훌륭했다. 공기가 맑고 달았다. 미국이 자랑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산소를 물리적인 가치로 환산해서 엄청난 가격을 매겨놓은 것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방아다리 약수터로 오르는 이 길의 산소는 요세미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훌륭했다. 키 큰 전나무가 울창한 길을 따라가는 즐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고 내 표현력의 한계를 실감할 뿐이다. 일행은 욕심을 부리며 심호흡을 끊임없이 해 되며 약수터에 도착해서 철분과 탄산이 풍부한 미네랄을 마셨다.
잊을 수 없는 방아다리 약수터로 가는 길은 나를 무심에 빠지게 만드는 길이었다.
넋이 나갈만큼의 예찬을 아끼지 않고 오대산 월정사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오대산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은 가로수가 전나무라 참 인상적이었다. 잘 다듬어진 짙푸른 전나무는 남쪽의 벚나무와 대조를 이루어 이색적인 맛이 있어 멋있다.
월정사는 오래된 고찰로써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절을 둘러싼 고목들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잘 보여주듯 첫눈에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연휴라 다소 사람들이 많은 게 흠이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대승불교라 고요하면서도 깊고 장엄함이 있는데 많은 인파가 사찰의 고유한 정서를 흩트리고 있어 아쉬웠다. 월정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며 많은 불교 유산을 보유한 사찰이기도 하다. 월정사 8각 9층석탑과 석탑을 향한 석조보살좌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절제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석조보살좌상의 미소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너그러우면서도 고요한 미소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월정사 산책길을 여유롭게 걸어보고 상원사로 올라 갔다. 월정사 다리를 건너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계곡은 내가 평창을 다녀온 것에 대한 최상의 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은 수줍은 듯 단풍은 계곡을 향하고 한참을 올라가는 길은 환상적일 만큼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최상급의 단어가 아름다운 이 어휘 말고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 이런 것이 내 불행이다.
상원사에 도착해서 절 뒷산을 보니 하늘로 뻗어있는 전나무가 기를 발산하고 있는 듯 했다. 그곳의 나무는 어찌 기운이 넘쳐 보이든지 인간이 미미한 존재에 불과함을 느끼게 했다.
강원도는 골이 깊어 해가 빨리 지는 탓일까.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었다. 남쪽은 기형적인 것이 멋스러운 반면에 강원도의 나무는 목제로 쓰일 곧은 것이 특징이었다. 지금은 조경으로 쓰이나 목제로 쓰이나 한 목 가치는 매한가지지만...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내려오면서 차를 세우고 계곡으로 내려가 수줍은 단풍을 구경하고 섶다리에서 사진도 찍었다. 어저께 무이 예술촌에서 내 카메라 밧데리가 떨어져 일행 중에 아마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언니의 솜씨를 빌리기로 하였다.
솔샘에서 해외여행도 참 많이 다녔는데 계절에 맞춰 우리나라를 다니는 것도 참 매력적이라면서 참고해 보자며 다음을 기약하며 용평 스키장으로 향했다.
용평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꼭 스위스 루째른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르켰다.
나는 운동이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스키나 과격한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아이들은 겨울만 되면 스노보드를 타러 다니곤 해서 다칠까 염려스러웠다.
용평에 가보니 동계올림픽 유치에 온 힘을 다 쏟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치에 실패했지만 내가 보기에 강원도가 경쟁력은 있어 보였다.
삭도를 타고 발왕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산 줄기의 푸르름이 정상으로 올라가자 겸손한 단풍이 간간이 보이더니 발왕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온 산의 단풍이 미친년 마음같이 빨갛게 흥분하고 있었다.
와우~
세상에 이 토록 아름답게 물든 단풍이 또 있을까.
"신이시여 제가 세상에 존재함에 행복하나이다.
이 처럼 아름다운 세상에 저의 존재가 비록 미미할지언정 당신이 베푼 이곳에 잠시나마 머무르게 하심을 허락한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참 아름답다.
일행은 정상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자 했는데 이미 런치타임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삭도 운영 시간이 5시 30분으로 제한되어 모든 직원들이 산아래로 그 시간에 다 내려가야 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멋진 점심은 포기하고 햄버거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갔다.
멋진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벤치에서 한 조각 햄버거일지언정 그 맛은 감미롭기가 이를 데 없었다.
눈앞에 안개가 서서히 몰려오더니 어느새 바람을 따라 날아가곤 하는 반복적인 정경을 보니 백두산 여행이 생각났다. 코발트 빛 천지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안개가 천지를 캄캄하게 덮기도 하고 또 맑은 물빛을 보여 주기도 하던 그 모습이 떠올라 참 좋았던 추억이 많아서 행복해진다.
여유를 부리면 끝이 없을 것이고 서둘러 내려와 횡계 황태찜을 먹으러 갔다.
이름난 유명한 집을 찾아갔더니 벌써 재료가 다 떨어져 손님을 받을 수 없단다. 일행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이틀 동안 참 많이도 다녔다.
겨울에 꼭 혼자서 한 번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올 준비를 서둘렀다.
횡계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올리니 차가 줄을 서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여를 밀리고 밀려서 겨우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거북이걸음으로 원주까지 내려와 중앙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다.
1박 2일을 운전하니 내려올 때는 정말 피곤했다.
그러나 언니들이 즐거워하고 나 또한 행복한 시간이었으니까.
이번 가을 여행은 참 행복했다.
그래서 한참 동안은 내 안에 가을이 가득할 것이다.
효석 문학관 야외 시화전에서 본 시 한 수가 마음에 다아 옮겨 본다.
입추
김남극
잣나무 가지에
매미가 벗어 놓은 몸
참 고단했겠다.
몸속 진을 다 빼서 입었을 몸
참 잘도 빠져나갔다.
나도
쏙
이 몸을 벗어 놓고
잣나무 가운데 가지쯤에서
쏙
몸 벗어 놓고
잣나무 가지 끝에서
휙
뛰어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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