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내게있어 언제나 잔인하다.
기다림에 지치게 만들고 화려한 슬픔에 젖게 한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옷깃을 여미며 낙엽이 쌓인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방앗간에선 김장준비를 위한 고추 찧느라 분주하고 사람들의 세상사가 소리가 되어 피어 오른다. 한결 추워진 탓에 좌판을 펴고 앉은 아낙네의 손끝이 파르르하다. 쌈배추를 담은 소쿠리에 낙엽 하나 사뿐히 내려 앉는다.
가을이 되면 늘 친구가 그립고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말 한 마디가 아쉽다. 내게 좋은 말로 칭찬하는 절친과 적당히 싫은 소리 할 줄 아는 친구사이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마음을 재어본다.
누군가 그런다, 내 글을 보면 그 느낌과 감정이 와닺고 마치 이른 아침 개울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혼이 맑고 순수해 보인단다. 참 근사한 칭찬이다.
오늘은 그래서 행복하다. 비록 친구의 표현이 과장일지라도 그 말을 믿고 싶다.
더군다나 오전에 힘든 검사를 하고 왔다.
주치의의 처방인 팻시티를 찍었다.
팻은 우리 몸의 나쁜 뭔가를 찾아 내는 전신을 찰영하는 시티다. 링거와 주사를 맞은 다음 그 약기운이 퍼질 때까지 한시간여를 누워서 기다렸다가 찍어야 한다.
기계에 묶인체 누워, 기계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우리 몸 구석구석을 찍어 내는 모양이다.
두눈을 꼭 감고 기계에 몸을 맡긴체 온갖 상념에 빠져든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이렇게 두눈 감고 혼미한 상태로 기억 저 너머로 들어 가는 것일까,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 지옥과 천국을 다녀오는 그런 이야기다. 내가 마치 소설의 어느 등장 인물처럼 영들이 모여사는 세상을 가보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참 편안함을 느꼈다. 죽음이라해도 두렵지 않고 너무 편안한 마음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분주하게 내 몸을 찍어대는 의사 선생과는 달리 나는 이성과 저성을 오가는 놀이에 빠져들었다. 긴 시간 검사를 끝마치고 병원을 나서니 어지러워 하늘이 빙빙 돈다.
아!
가을이었구나,
세상이 온통 빨갛고 노랗게 물든 가을이었네.
육신을 빠져나간 영혼을 가까스로 불러들이듯 정신을 차리고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 온다.
가을은 이렇듯 내 영혼을 흔들어 혼란에 빠져 들게 하고 막연한 기다림에 지치게 한다.
오늘은 친구의 아름다운 칭찬에 위안을 삼고 내일을 기다릴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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