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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설국

by 하이디_jung 2013. 1. 2.

 

  새해 첫날 남편과 부모님의 산소를 찾았다.

산소에는 지난주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하얀 이불을 덮고 계신듯 평화로워 보였다.

술 한 잔을 따르고 우리 부부는 절을 올렸다.

생각해보면 어머님이 참 그립다.

살아 계셨더라면 이제 겨우 여든을 조금 넘어셨을텐데...

인자하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부모님께 다음에 또 찾아뵙기를 약속하고 산을 내려왔다.

그 길로 우리는 해인사로 향했다.

해인사로 가는 길은 아직도 쌓인 눈으로 미끄러운데 함박눈마저 휘몰아치고 있었다.

앞이 희미할 정도로 눈이 펄펄 내렸다.

뒤돌아 갈까 잠시 망설이다 나선김에 가보기로 했다.

홍류동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설국으로 너무 아름다웠다.

소나무 위에 하얗게 쌓인 눈은 소담스러웠고 메마른 가지에서도 설화를 피우고 있었다.

해인사 골짜기가 하얗게 잠겼다.

거두절미하고 순백의 설국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0여분 눈길을 걸어서 대웅전에 도착했다.

눈으로 덮인 천년고찰 해인사는 법보사찰답게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날을 부처님 뵙기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역시 작은 소망을 이루기를 염원하였다.

대웅전에서 나와 일주문으로 내려오는 길옆,

줄지어 천년을 지키고 서 있는 아름들이 고목은 인간에게 많은 깨달음을 갖게 한다.

마치 부처님의 수호병마냥 부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호위하듯 일렬로 거수 경례한다.

아름다운 골짜기에 눈이 내려 수 많은 사람들이 발자국을 남겼지만 때묻지 않은 청정함과 고요를 간직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휴대하지 않음을 후회하고 후회했다.

차를 몰아 돌아 오면서 눈 내리는 홍류동 계곡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세상에 무릉도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하는가,

부처님의 나라 해인사는 설국의 무릉도원이었다.

새해 첫날 우리 부부는 마치 선경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듯 했다.

지금도 선하다.

함박눈이 내리는 해인사의 아름다운 설경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이 떠오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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