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심한 코감기로 코를 풀다 귀를 다쳤다.
그 이후 귀에서 작은 이명이 들리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네 병원 두 곳엘 가 봤지만 난청이라고 했다.
나는 다친 것을 알고 있는데 난청이라고 하니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시간이 일년여가 흘렀다.
이제는 너무 신경이 거슬리고 스트레스라 마음 먹고 미루어둔 병원을 찾았다.
유명한 모병원은 진료를 받기 위해선 새벽 4시경,
아니 번호표 40번은 가져야 원장선생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각오를 단단히 했다.
알람을 새벽 4시에 맞춰두고 잠을 청했지만 선잠을 자느라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4시에 일어나 남편과 아이가 먹을 수 있도록 아침을 준비해 두고 어둠을 뚫고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5시가 채 되지않았는데 벌써 번호가 22번이었다.
병원문도 열지 않았는데 입구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새벽 멀리 타지에서 밤새 달려 1시에 도착한 사람 그리고 3시에 등...
의사샘이 얼마나 용하시길래 그 멀리서 밤새워 달려오고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나 싶었다.
내가 도착하고 20분도 되지않아 하루 진료 인원 40번을 훌쩍 넘겼다.
새벽같이 달려온 보람도 없이 원장님께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원장님을 만나는 아쉬움에 불만스러워 했다.
6시가 조금 넘자 병원 간호사가 접수를 받기 위해 출근을 했다.
그 와중에 한바탕 큰 소란이 있었다.
병원사정을 잘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이름만 적어 놓고 갔다가 돌아와보니 인정을 받지 못해 소란을 피웠다.
이런 관계로 사람들이 킥서비스에 의뢰하거나 심부름센타에 의뢰를 하다 무효가 되기도 하는 희한한 진풍경이 벌어 졌다.
나는 간신히 접수를 하고 오후 3시 예약을 받고 집으로 왔다.
그리곤 점심을 먹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정밀검사를 받았다.
동네병원과는 확실히 달랐다.
제대로 원인분석을 하고 처방을 내렸다.
검사결과 저음을 듣는 기관이 다쳐서 왼쪽 저음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상된 곳은 약물치료를 하기로 했다.
겨우겨우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서 집으로 오는데 피로가 전신을 덮쳤다.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명이 잦아지길을 간절히 바래본다.
나이 든다는 것은 육신이 고장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