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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최후의 만찬

by 하이디_jung 2008. 9. 16.

 
  최후의 만찬
               하비에르 시에라
               박지영 옮김.

  작가는 1497년 아구스틴 레이레 신부의 입을 빌려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 산타마리아 델라그라치에 성당의 식당 벽화를 레오나르드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면서부터 의문의 죽음이 이어진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성당은 부패하고 권력화되어 신과 인간의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핑계로 지배적 위치에 이르게 된다. 베드로의 교회가 뷔페에 이르자 새로운 신비주의적 교회 카타르파가 등장한다. 카타르 파는 사도 요한과 마리아 막달리나의 교회로서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아무 곳에서나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신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교회였다. 카타르파의 우두머리인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통해 교묘하게 이교도적 사상을 그린다. 이것을 안 아고라로는 로마의 교황에게 무기명으로 투서를 하게 되고 로마교황청에서 종교재판관 레이레 신부를 파견한다. "최후의 만찬"에 그려진 12제자의 위치와 문자화로 그려진 것. 요한은 공녀 엘레나가 모델이 된 점. 유다 타 데오는 다빈치 자신의 초상화란 점. 실제 여러 가지의 의문점들이 교묘하게 숨어서 새로운 요한의 교회를 알리고 있다. 그림이 완성되는 날 의문의 죽음들이 다 밝혀지지만 레이레 신부는 교황청에 알리지 않은 채 이집트의 야발 알 타리프의 동굴로 숨어 버린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이야기를 파피루스에 남기고 죽는다. 사도 요한과 마리아 막달리나의 하나님과의 대화인 "푸른 책"은 카타르파의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책으로서 새로 세운 요한의 교회에 들어가려는 자들에게 세례용으로 쓰였다.
레이레 신부는 왜 교황청에 고하지 않은 채 사라져서 "푸른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남겼을까. 아마 그것은 부패한 교황청이 더 이상 신의 매개체로서 역할이 정당화될 수 없음과 새로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인정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신과 직접 대화하고 영혼의 가치에 바탕을 둔 미래교회의 도래를 간절히 기다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염원인지도 모른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읽은 다음이라 "최후의 만찬"은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것 같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는 작가의 천재성과 치밀한 구조를.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는 독자로 하여금 길을 찾아가듯 어두운 골목을 더듬어 가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어쨌든 중세의 종교적 가치관의 혼란이 만들어 낸 미스터리들이 소설화되어 다빈치의"최후의 만찬"을 이제는 즐길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되었고 "모나리자의 미소" 또한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최후의 만찬"에 요한과 "모나리자의 미소"는 공녀 엘레나의 부분적 초상이라니 다시 한번 눈여겨 볼만하다.
파리의 루블박물관에서 본 "모나리자의 미소"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내 추억이고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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