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한 세기 강력한 해상국으로 세계의 많은 땅을 지배하기도 했던 나라,
그러나 기원전 2세기부터 600여 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7세기에는 서 고트 왕국의,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은 나라...
그러나 15세기부터 바다를 개척하는 강력한 해상국으로 브라질, 인도, 중국의 마카오까지 지배를 하였다.
후춧가루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가 외형적인 치장과 사치로 국력을 상실하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는 나라...
그러나 자연이 너무 아름다운 나라,
초원 위에 숲을 이루고 있는 코르크나무는 세계적인 코르크생산지로 유명하다.
이미 껍질을 벗겨낸 나무 밑둥치는 햇살과 바람을 받으며 안쓰러움을 드러내고, 껍질을 벗기울 나무는 투박하고 우들투들한 모습으로 차례를 기다리며 답답함을 호소하듯 바람에 몸을 떨고 있었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코르크나무는 사람이 피부 각질을 벗겨내듯 껍질을 벗겨 주어야만 잘 자란다고 했다.
그러니 벗겨진 나무를 보고 안쓰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포르투갈은 자연이 참 아름다운 나라였다.
국화인 라벤더가 지천으로 피어나 아름다움과 향기를 세상에 뿌리고,
나지막한 언덕에 예쁜 나무 숲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나라,
고속도로보다 국도가 더 아름답고 멋지다며 목적지 파티마를 국도를 따라 가는데 정말 봄이 눈부시고 계절이 빛나고 있었다.
좁은 도로 가로수가 너무 멋지고 사방에 피어난 작은 야생화는 끝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오직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파티마는 포르투갈의 산타렘주 빌라노바데오렘의 작은 마을이다.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달 13일이면 3명의 어린이에게 성모의 발현이 있었다. 어린 목동들의 말을 믿지 못 하는 어른들은 유언비어 유포죄를 물어 감옥에 가두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성모발현이 확인되면서 로마교황청의 인정으로 오늘날 가톨릭 2대 성지순례로 꼽히며 많은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곳이 되었다.
파티마는 대성당과 성모 마리아 발현 예배당이 있다.
일행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기온이 뚝 떨어져 모두 추위에 당황하며 미처 챙겨 오지 못한 두툼한 파카에 대한 아쉬움을 거두지 못하고 미숙한 정보전달을 한 여행사 측을 원망하기도 했다.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는 파티마의 전경은 고요와 엄숙함이 광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로 난 참회와 소원의 길은 천국에 이르는 길처럼 광장 끝에서 제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불교 삼보일배처럼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으로 걸어서 기도하며 제단을 향해가는 어떤 이의 모습에서 숭고하고 간절함을 볼 수 있었다.
해 질 녘 어둠이 내려앉는 성당 종탑에서 맑은 종소리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뭉게구름 낮게 떠있고 한 줄기 무지개가 하늘에 걸리었다.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성모님의 환영인사로 여기며 잠시 숙연함으로 기도를 해본다.
저녁 미사가 끝나면 촛불미사 때는 많은 사람들이 촛불 행진을 한다고 하여 일행과 함께 참가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호텔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가자니 추워서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섭섭하지만 촛불행사에 참가하지 못했다.
다음 날, 우리가 묵은 호텔이 파티마 성당 앞이라 이른 새벽에 성당의 넓은 광장으로 산책하며 그 평화로움에 젖어 볼 수 있었다.
새소리는 아침 공기를 가르고 성인 베드로의 동상 앞에서 묵주를 돌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중얼거리며 정면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서 걸어가고를 반복하는 어떤 이의 모습에서 종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이 광장을 채우며 아침 이슬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고개 들어 종탑을 바라보며 이 먼 이국 땅에서 마음이 이토록 평화로움에 젖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침을 먹고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으로 부지런이 달리고 있었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자기 나라에 도착해서 인지 부쩍 시끄러워졌다. 기사 아저씨는 포르투갈 사람이었다. 그래서 포르투칼에 도착하자 가족에게 하는지 아니면 친구에게 하는지 전화기를 잡고 수다를 떠는 듯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최고의 도시라고 한다.
타호강의 삼각 하구에 위치한 도시는 삼각주의 퇴적 위로 도시가 넓어져가고 있단다.
리스본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하고 예쁜 도시였다.
번화가를 비롯해 한적한 변두리까지 둘러보았는데 도시가 참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그곳 사람들은 쾌활하고 활동적으로 보였다. 노천 카페에 앉아 여유로움을 부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간이 멈춰진 것 같았다.
참 부러웠다, 그들의 여유로움이 부럽고, 느린 시간이 부럽고, 그들의 멋진 도시가 부러웠다.
리스본의 인상적인 것은 유럽의 도시 대부분이 그렇지만 리스본의 도로도 대리석으로 깔려 있고 보도에도 예쁘게 문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사용하지 않고 대리석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그 나라의 물산이 어떤 것이 풍부하냐를 가름하는 것이 건축물이 지어지는 재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럽은 대리석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 모든 건축물이 대리석이기도 한 것이다.
16세기 1502년 항해 왕자 엘리케와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 일주를 기념하며 마누엘 1세가 세웠다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석회암으로 건물은 한 변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는 웅장하고 화려한 노르만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일행은 수도원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멋진 건축물을 감상하며 아쉬워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6세기 포르투갈의 전성기의 영광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포르투칼의 건축 제한 색으로 지붕은 주황색 벽은 흰색이 통일을 이루고 있었다. 추른 초원 위에 동화 같은 집들을 보면서 부러웠다. 똑같은 색깔로 마을을 이루고 있는 풍경은 낯설지만 너무 아름다웠다.
리스본은 유럽공동체에서 1994년 유럽문화도시로 지정했다고 한다.
넓고 우아한 가로수 길과 모자이크식 포장도로, 중세 건축물이 어우러진 훌륭한 도시였다.
리스본을 빠져나올 때 핑크 아카시아 가로수는 아쉬움이었다.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에 위치한. 로카 곶'을 관광하였다.
깎아지른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는 대서양 저 편으로 이어지고 빨간 지붕의 등대, 하얀 집들, 키 작은 야생화 패블비치(일명 눈물의 꽃)가 언덕을 가득 채우며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십자가를 떠받치고 있는 비석에는 '여기서 대륙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는 포르투갈 시인 카포에스의 시가 새겨져 있다. 그곳이 땅끝이라 그런지 그리움을 간직한 풍경이었다. 작은 언덕이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언덕을 채우고 있는 눈물의 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괜히 마음이 센치멘탈 해졌다.
더군다나 가량비가 내리고 파란 바다 위 하늘은 회색으로 우울해 보이는데 파도는 쉴 새 없이 바위에 부딪히며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울해졌다. 그 순간 두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먼 나라 여행 중인 내게 가끔은 애인 같은 문자를 보내오는 남편에게 고맙다.
풍경이 아름다운 로카곶,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곳이 틀림없다.
포르투갈의 여행은 문화재보다, 중세 건축물보다,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였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서정적인 감미로움에 빠질 수 있는 나라,
포르투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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