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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케치

보석같은 하루

by 하이디_jung 2011. 11. 16.

 

  가을이 바쁘다. 서쪽으로 기울기를 제촉하듯 오후가 늦다싶을 무렵 해는 벌써 넘어간다. 시절이 바빠서일까 나도 덩달아 바빠진다. 얼마전 우리절에서 진주에서 열리는 서화전을 다녀왔다. 우리스님과 인연이 있는 금담 큰스님의 서화전이었다. 서화전에는 그동안 큰스님께서 모아둔 작품과 스님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작품을 감상했다. 스님들의 작품은 일반인들과 달리 불교적이라 불자의 시각으로 봐야 더 잘 보일 수 있다. 주제가 부처님, 경, 달마도 그리고 공이다. 간혹 사군자도 있지만 대부분이 불교적인 색채가 뚜렷한 작품들이다.

 식이 진행되면서 춤으로는 관음무가 있었다. 흔이 승무는 바라춤이 대부분인데 처음 접하는 관음무라 호기심에 가득했다. 무희가 하얀 인도식 전통복장, 아니 관세음보살님의 차림으로 나타나 아주 정적인 동작으로 춤사위를 보여주었다. 머리엔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관을 쓰고 팔목에도 노란 황금빛 팔찌와 아름다운 보석으로 치장했다. 눈은 아래로 지긋이 감은체 엄지와 중지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우아하고 거룩한 손동작을 중심으로 춤을 추었다. 다섯 손가락중에 검지,약지와 새끼손가락은 곧게 펴고 엄지와 중지를 동그랗게 모아 하늘을 향해 펼쳤다가 땅으로 애절하게 모았다가 이 땅의 많은 불자들을 품어보듯 가슴에 껴안는다. 나는 대리석 바닥위에서 하얀 춤사위를 보여주는 무희에게 정신이 함몰되었다. 무희가 비구승인지 아니면 불교의 승무를 연구하는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궁금함은 뒤로하고 관음무에 푹 빠졌다. 무희는 평화와 축복이 가득한 하늘나라로 이끌듯 부처님의 나라로 인도하려는 몸짓으로 맑은 영혼에 불심을 물들게 했다. 아름답고 거룩한 춤이었다.

 태고적부터 신은 춤과 노래 차와 아니면 술을 즐긴다. 그래서 부처님께도 춤, 노래, 차를 올린다. 전시장 한켠으로 차와 다식이 준비되어 있어, 나는 처음엔 국화차 두 잔, 그리고 황차를 두 잔 더 음미했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향긋한 가을향기가 좋아 그 곳을 떠날줄을 몰랐다. 차향에 취해있을무렵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난 개구장이 스님 한분이 고요한 내 정신을 깨웠다. 스님은 머리에 목도리를 접어 얹어 마치 희안한 모자를 쓰고 계시듯하다. 그 스님은 팔공산 자락에 계시는 작은 갖바위 부처님처럼 천진난만하시고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나는 스님을 뵈니까 저절로 웃음이 나와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님에게 사진을 함께 찍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스님曰 "나는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사람인데"라고 하신다. 그래도 난 떼를 쓰다시피 스님과 사진을 찍고 스님이 머물고 계신 절이 어딘지 여춰보았더니 스님은 "바람과 구름같이 떠도는 중이라 딱이 머물는 곳이 없습니다"라고 하신다. 어느 날 내 영혼이 어지럽거나 혼란스러우면 한 번 쯤 찾아뵙고 치유를 얻고 싶었는데 스님은 끝내 거처를 알려주지 않으셨다. 아마 스님께서 내 욕심을 미리 알아 채셨는지도 모르겠다.

갈바람이 청곡사 처마를 훌고 지나가고, 풍경이 맑은 소리로 귓전에 부딪친다. 진주청곡사는 신라시대 지어진 고찰이다.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청곡사는 정적이 감도는 조용한 사찰이었다. 몇명 안되는 불자들을 위해 평소에 궂게 채워 두었던 박물관 자물쇠를 열어주었다. 다행이 국보 쾌불이 걸려있는 성보박물관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직도 감잎이 예쁜 단풍으로 남아있는 남녘에는 북녘과는 또다른 풍경이다. 대구 근교에 있는 청도의 감나무 잎은 이미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무가지에 감만 주렁주렁한지가 오래다. 생각해보니 내가 자란 경남 합천에서도 감을 딸무렵 잎이 단풍들어 예뻤던 기억 그리고 동무들과 감잎을 얼기설기엮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가을이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추억 한자락 떠올릴 수 있어 다행이다.

가을 여행이랄 것은 없지만 우리절에서 떠나게 된 하루가 우연히 발견한 보석처럼 빛나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행복한 가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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