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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케치

나를 위한 시간

by 하이디_jung 2011. 12. 17.

 

  늘 이맘 때가 되면 마음이 어수선하다. 묵은 해와 새해의 경계에 이른 시간이라 그럴 것이다. 이미 쌓은 나이도 많은데 한 살을 더 보태야 한다는 건, 이나이에 느끼는 낡은 외투 하나 더 걸치듯 거추장스럽고 부끄럽다. 매일을 의미있게 보람되게 산다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부질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싶은 아쉬움이다. 그렇다고 뜨거운 열정이 살아있던 젊은 날의 시간처럼 정열적일 수 있는 그 어떤 일을 바라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소박하고 작은 것이라도 이 나이에 느낄 수 있는 가슴 뿌듯한 것이면 족하다. 사실, 이런 마음도 이제 삶이 능동적이기보다 수동적으로 바뀐 나 자신 스스로를 책망해야 마땅하다는 자책을 해야 옳다. 그래서 이 시간만 되면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서글픔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을 나기위해 김장을 했다. 요즘 주부들은 절임배추를 사다가 간단하게 집에서 양념만 해서 김장을 한다. 그런데 나는 좋은 천일염으로 절여서 김장을 하고 싶어 배추를 샀다. 깨끗하게 다듬어진 배추를 들여오고 며칠동안 하나씩 준비한 양념과 재료를 한켠에 챙겨두고 배추를 절였다. 지인이 가르쳐 준대로 커다란 고무통 대신 두꺼운 비닐을 사다가 용기로 썼다. 비닐을 묶어서 펴보니 마치 유아용 수영장처럼 넓직해서 좋았다. 따뜻한 물을 받아 소금을 녹이고 배추를 적셔 소금 한 줌씩 쳐서 하룻밤을 재웠더니 알맞게 절여졌다. 배추를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를 빼고 양념을 마무리 했다. 양념은 먼저 멸치, 새우육젖과 보리새우를 갈아놓고 마늘과 생강도 갈았다. 청각은 깨끗이 씻어 가정용 카터기에 갈고, 육수는 북어대가리, 멸치, 다시마를 넣고 푹 끓여 두고 찹쌀풀도 넉넉이 장만해 놓았다. 마무리는 준비한 양념을 모두 넣고 골고루 잘 섞어 주는 것이다. 어느 김치 연구자의 과학적 발효의 과정에서 빠뜨리지 말고 꼭 첨가해야 한다는 설탕 즉 당분이다.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유산균이 당분을 섭취한후 좋은 유산균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치박사의 말을 믿으며 평소 사용하지 않는 하얀 설탕을 첨가해 본다.

양념이 다 준비되고 본격적으로 김치를 버무릴 준비를 했다. 식탁위에다 신문지를 골고루 펴고 무우와 대파 채 썬 것과 양념통 김치를 담을 김치통 그리고 김치를 버무릴 넓찍한 그릇까지... 혹 머리카락이라도 떨어질까봐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단단이 동여 매었다. 그렇게 김치는 버무려졌고 내 손 끝에서 맛을 내며 한통 두통 김치통이 채워졌다. 그것도 28포기씩이나...

김장을 다 해놓고 몫을 나누어 본다. 우선 양념을 적게 바른 한통은 친정엄마 것, 우리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한통, 맛보시라고 경비 아저씨 두쪽, 옆집에 두쪽 그리고 친구 서너쪽 그리고 큰이모는 웬만한데 한통 이렇게 나누니 배추 열포기는 나갔다. 생전 처음으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김장을 했다. 그래서 나누어 주는 것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마지막 정리를 다하고나니 마음이 뿌듯하고 나 스스로가 정말 대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 껏 이모들이나 친정엄마가 김장을 해주었는데 겁없이 덤빈 김장인데 다 해놓고 보니 나도 할 수 잇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못해 자만해지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혼자서 제일 큰 일을 한 것이다.

김장을 마치고 수육을 만들어 작은 아이와 볼이 미어져라 맛있게 먹었다. 주위의 친구들은 나의 이미지를 주부라기보다는 일을 잘 할 줄 모르는 공주과에 속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내가 김장을 혼자 했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김치의 맛을 의심하기도 한다. 허지만 김치 맛은 먹어 본 사람들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맛있다고. 친구들을 만나면 김장을 혼자서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친정엄마의 음식 솜씨를 배워야 하는데 당신이 알아서 다 해주니까 나는 배울 필요가 없었다. 엄마는 마음이 변했는지 올 가을이 들면서 내게 뭔가를 자꾸 가르칠려고 하신다. 된장 만드는 것과 고추장 만드는 것 그리고 장 담그는 것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연세가 많아지면서 마음이 약해지는 모양이다. 파평 윤씨 양반가의 장녀로 태어나 물려 받은 음식솜씨가 좋으신 엄마는 늘 내가 말만 하면 맛있는 것들을 다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배울 필요가 없었는데, 몸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는 게 자식의 마음이다.

이제야 철이 든 것일까. 혼자 김장을 하고 이모가 갖다준 들깻잎과 콩이파리 김치도 담갔다. 이만하면 주부로서 손색이 없지 않을까.

날씨가 영하로 떨어졌다. 한 해가 가고 있는 요즘 마음이 날씨 만큼이나 추위를 느낀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구나 싶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모두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가끔 궁금해 진다. 마음 속으론 늘 의미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지만 돌아보면 부질없는 시간들이다. 그래서 꿈을 꾸기보다는 작은 소망 하나를 가져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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