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봄이 너울 거린다.
봄이련가 했더니 어느새 녹음이 짙어 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오월이 시작되던 날 친구들과 모은 곗돈으로 중국 사천성으로 여행을 떠났다.
구채구와 황룡을 목적지로 정하고 인천에서 비행기로 3 시간하고 40분이 더 걸려 쓰촨 성 성도공황에 중국시간으로 11시 40분에 도착했다. 첫날은 그렇게 중국땅을 밟는 것으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번 여행은 우리 친구 7명과 서울에서 합류한 부부 이렇게 9명이 6일 동안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 투어를 시작했다. 유비와 제갈량을 모신 무후사를 관광했다. 중국에서는 우리와 달리 유비는 별로 알아주지도 않고 제갈량을 황제의 위치에 모신 것이 의외였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인격을 완성한 인물이고 제갈량은 지략이 뛰어나 유비를 도와 승리를 이끌어 내는 전략가일 뿐인데, 중국인들은 제갈량에게는 머리를 숙이고 황제가 쓰는 관을 씌워 우러러 존경하는데 유비는 그 반대로 생각한다니 조금은 재미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무후사를 나와 중국의 심벌 팬더 곰을 만나기 위해 판다파크로 이동했다. 나른한 봄날 판다는 이쁜 짓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판다파크에는 판다가 100여 마리가 넘게 자유롭게 서식하고 있었다. 중국정부에서는 판다의 번식을 위해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애쓰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다의 개체수가 점점 줄어 안타까운 일이다.
오전 성도에서 대충 투어를 끝내고 구체구로 이동했다.
구체구로 가는 길은 높은 산들과 물살이 급한 강을 끝없이 따라가는 멋진 길이었다. 친구들은 와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셔트를 누르기도 했다. 먼 길을 가야 함에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웅장한 산세와 올망졸망한 마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한참을 달리자 2008년 쓰촨 성 지진이 일어났던 곳을 직접보게 되었다. 구체구로 가는 길은 피해의 현장을 지나야 갈 수 있다. 무너진 산더미에 반은 묻히고 반은 모습을 나타내는 자동차며 끊어진 다리와 파손된 길,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을 목격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예전의 구체구 가는 길은 완전히 폐쇄되고 4여 년 만에 새 도로를 만들어 그렇게 관광객과 물류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곳의 산들은 언뜻 보기에도 마사토 같아 비만와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는데 지진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많은 피해가 났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가이드의 말을 빌리면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2만여 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가 달렸던 길 옆으로 고속도로가 한창 공사중이었다.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좀 더 쉽게 구체구로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성도시에서 시속 50k를 달려가니 구체구까지는 좋게 8시간을 가야 했다.
그렇지만 가는 길이 눈 맛이 여간 아니라 지루하거나 힘들지가 않았다. 천주사가 가까워지자 강족들의 마을이 나타났다. 강족은 양을 신으로 모시는지 창문이나 문 앞에 양머리 조각이나 그림이 장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천주사를 지나자 산과 들 그리고 마을에 휘날리는 라마교의 경판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 경판이 휘날리는데 한 번 휘날릴 때마다 복이 쌓인다는 티베트 사람들의 믿음이 신기할 뿐이었다.
버스는 점점 고산으로 올라가 해발 3천에 가까워지자 우리는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도 바뀌어서 키 작은 나무와 멀리 4천이 넘는 산에 쌓인 만년설이 눈앞에 다가오기 시작하고 어느새 내리는 봄비는 해발 3천 고지를 넘어갈 때 하얗게 눈이 내렸다. 만년설과 사방이 하얀 세상이 오월 봄에 아름답게 펼쳐졌다.
고지에서 나무가 빼곡한 구체구로 내려가니 계곡에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시림은 수천 년을 걸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밀을 간직한 체 이제야 구체구를 세상에 드러내었다. 구체구가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여 년이 남짓하다고 하니 그래서 당당하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구채구는 티베트인이 사는 마을이 9개라고 해서 구체구로 불린다고 한다.
어둠이 완연한 저녁 8시에 구체구에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 앞에 앉았다.
다음 날 5시 30분 모닝콜에 놀라 잠이 깨어 창문을 열었다. 상쾌한 봄내음이 코끝을 자극했다. 잠이 들깬 몸이 청량하고 상큼한 바람에 놀라 부르르 떨린다. 새소리 물소리는 깊은 산골 어디쯤인 듯했다. 기분이 날아 갈듯 가볍다.
아침을 먹고 Y자형 구체구 비경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구채구는 관광버스는 탈 수 없고 구체구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구체구 관광특구로 들어가니 초입부터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호수는 코발트빛 아름다운 물빛과 막 겨울에서 깨어난 세상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봄이 무르익은 우리나라와 달리 고산이다 보니 이제야 봄이 깨어나고 있었다. 싱그러움 연초록 그리고 주황, 노랑, 발그레한 나무 이파리가 마치 가을을 연상시켰다. Y자 코스 중 오른쪽으로 먼저 들어갔다.
버스에서 내려 계곡으로 나아가니 맑은 물소리, 수량이 풍부한 물은 실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모습이 작은 나이아가라를 연상시켰다. 아름답다, 멋지다를 연발하며 깨끗한 공기는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진하늘 물빛, 이제 막 돋아 나오는 새싹, 봄의 생동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끝없이 펼쳐진 비경을 카메라에 담고 또 담았다. 그 아름다운 비경에도 불구하고 친구 두어 명은 고산증세인 두통에 시달리며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이 되고 있었다. 간혹 뿌리는 비에 우리 친구들은 한국에서 준비해 간 핑크 비옷을 똑 같이 챙겨 입고 뭇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구체구의 아름다움은 내 짧은 어휘력으로 표현할 수 없어 사진으로 실어 놓고 보고 있다. 사진 또한 자연의 위대한 현장감을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내가 보고 느꼈기에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친구들이 못 왔다면 후회할 뻔했다고 말하지만 보지 않으면 후회도 하지 못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비경에 이름 붙여진 수정구, 일측구, 진주처럼 물방울이 튄다고 진주탄 등등 그야말로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비유한 수많은 구경거리가 구체구에 담겨있었다. 구채구는 오직 보는 것만이 능사다.
아직도 생생하다, 봄이 생동하는 깊은 골짜기에 만년설이 녹아 수많은 폭포를 이루고 호수를 만들면서 아름다운 지태로 인간을 현옥 시키고 넋을 잃게 하는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위대한 자연이 숨어 있는 구체구,
그 아름다움에 몽롱해진 정신은 삶에 찌든 누더기 같은 찌꺼기들을 기어이 비워내고, 컴퓨터 하드웨어를 포맷하듯 다 지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 순수하고 티 없이 맑은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구체구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신선과 선녀들이 사는 곳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