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후기

해발4천 황룡

by 하이디_jung 2012. 5. 26.

 

 구체구에서 이틀을 보내고 이른 아침 황룡으로 떠났다.

한적한 시골길을 굽이굽이 돌아 황량한 티베트지역으로 들어갔다. 차마고도를 따라 차를 실어 나르던 당나귀 대신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좁은 도로를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송판의 마차시에서 찻집을 방문했다. 찻집에 가득한 보이차 역시 어느 트럭에 실려 험준한 산맥을 넘어 마차시까지 왔을 것이다. 보이차의 본고장답게 돌덩이처럼 쌓아 놓은 차덩이가 우리를 압도했다. 평소에 차께나 마신다고 우쭐해하던 나는 풀이 죽어 감탄사만 토해내었다. 제법 비싼 보이차를 소장하고 즐겨한다며 얼마나 당돌하게 굴었던지, 하나 그곳 찻집에선 모른 체 하는 것만이 능사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 차맛을 음미하고 차를 샀다. 그러나 나는 보이차는 살 수가 없었다. 집에 있는 것보다 못한 거는 사고 싶지가 않았고 더 좋은 차를 사려고 하면 큰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좋은 차를 본 것만으로 충분했다. 친구들의 손에는 차봉지가 가득 들려있었고 나도 고산차 雪域용珠 한 통을 샀다. 철관음처럼 찻잎이 동글동글하다. 우려서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고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나는 차를 좋아하니까 처음 보는 차는 무조건 음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탓에 한 통 구입해서 친구들께 맛보라고 금씩 나눠주고 나도 잘 마시고 있다.

황룡으로 가는 길은 조금씩 고도가 높아져서 큰산을 넘어갈 때는 해발 3천8백이란다. 4천이 넘는 산들이 히말라야를 방불케 하고 만년설은 웅장함을 더해주었다. 험준한 산맥을 넘어가는 버스는 제한속도 시속 50k를 넘지 않으니 차창 밖으로 다가오는 비경은 차라 숭고함이었다. 산 정상 전망대에 도착해 보니 만년설과 구름이 압도했다. 추위에 덜덜 떨며 내 앞에 펼쳐진 사실들을 의심하며 연신 셔트를 눌렀다. 내 생에 그런 높은 곳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웅장하고 호방한 멋진 장관 앞에 언제 또 서 보겠는가. 가슴 깊이 간직하고 담아 두고 싶어 기억을 애써 간직해 본다. 차마고도, 벼랑 끝 좁은 길을 따라 당나귀에 차를 싣고 방울소리 딸랑이며 타박타박 길을 재촉하던 티베트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산맥을 넘어가니 제법 넓은 들이 나오고 야크 떼들이 새순을 뜯느라 코를 땅에 박고 있었다. 전형적인 고산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월인데도 두툼한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여유롭고 목가적인 풍경은 그림이 되어 다가왔다. 황룡에 도착한 우리는 점심부터 먹었다. 한나절을 달려온 탓에 지치기도 했지만 시장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식탁에는 갖 올라온 고비의 새순으로 만든 나물이 차려졌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고비는 고사리처럼 생겼지만 털이 복슬복슬한데 황룡의 고비는 꼭 소라를 닮았다. 귀한 음식이라 맛있게 먹었지만 친구 두어 사람은 밥을 먹지 못했다. 어디서든 맛나게 먹고 있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다. 세계 어디를 가든 모든 음식은 맛있다는 나는 여행은 즐거워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우리는 황룡 4천 m를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탔다. 황룡사 오체 지를 가는 길은 테크로 잘 다듬어 놓아 어려움은 없었지만 고도가 높아지자 하품이 나고 잠이 오기 시작했다. 산소가 부족하고 압력이 높아지자 걸어가는데 졸리기 시작하더니 쓰러져 자고 싶었다. 휴대용 산소를 마셔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얇은 패딩에 비옷까지 입었더니 몸이 따뜻해서인지 더 졸렸다 가이드는 앉아서 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많이 힘든 사람은 오체지까지 올라가지 말고 해발 3천6백 황룡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오체지에 도착해서 아름다운 다락논처럼 층층이 담긴 하늘색 물빛에 감탄했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석회암이 층층이 작은 호수를 만들어 물을 담아 하늘색 아름다운 물빛으로 사람들을 넋을 빼앗았다. 고개를 들면 만년설이 눈앞에 펼쳐지고 머리를 숙이면 아름다운 물빛이 나를 반겨주었다. 만년설이 녹아 골짜기 다락논에 물이 흘러들듯이 작은 물소리를 내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높은 곳에 올라온 것을 기념하며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기념하며 포즈를 잡았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문화유산답게 상상을 초월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산소부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황룡 오체 지를 쉽게 떠나올 수가 없었다. 자연의 위대함 신비로운 지구를 느끼게 만들었다. 또 세상 어딘가에 감춰져 있는 아름다운 비경을 찾아 나서고픈 마음이 일렁이는 바람을 따라 내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을 꿈꾸며 오체 지를 뒤로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황룡사에 들렸다, 우리와 달리 중국 불교는 소승불교라 절 분위기가 많이 다름을 엿볼 수 있었다. 우선은 승복이 검은색이라 무협인 같이 보여 생소하였다. 그렇더라도 종국에는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니 따져서 뭐 할까 싶다.

황룡의 아름다움을 충분이 다 보지 못했다. 왜냐면 아직 우기를 지나지 않아 수량이 충분하지 않아 그 아름다운 비경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시기였다. 어여뻐다던 작은 호수들은 맨바닥을 드러내고 초라한 메마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황룡의 모든 아름다운 풍경을 다 즐길 수 있으면 좋지만은 봄이라 보여주지 않는 것을, 대신에 막 깨어나는 싱그러운 봄을 만끽했으니 나름의 수확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면 아름다움의 절정이겠지만 봄은 봄대로 멋지다.

내려오는 길에 황룡사 절 밑에 건물을 짓고 있더니 짐을 가득 지고 힘겹게 올라오는 인부들의 고단한 삶을 목격했다. 벽돌을 지고 올라오는 사람들 중에에는 여자도 있었다. 참 대단한 삶들이라고 생각하며 유난히 깡마른 아저씨의 지게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양해를 구하지도 않은 채 우선 고단한 그의 삶을 프레임에 담고 말없이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저씨는 지친 눈빛으로 "쎄쎄"라고 인사를 한다. 아저씨는 그 초코파이를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집에 가서 자식을 먹일 것이다. 한 순간 삶의 발자국이 무겁게 다가온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얼마를 내려왔을까 마지막 황룡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용 산소가 필요치 않는데도 나는 남아 있는 산소를 들이 마시며 이방인의 표를 내고 있었다. 작은 연못에 얌전하니 하늘색 물빛을 담고 있는 풍경을 뒤로하고 그제야 벤치에 줄지어 앉아서 간식으로 비스킷을 꺼내 먹었다. 모두들 지친 표정이 역 역하지만 고산증세를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친구 한 명이 손발이 저리다고 했다. 심장이 약한 사람이 느끼는 미미한 후유증이라고 가이드의 설명이다.

황룡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도 내려오는 길은 힘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버스와는 달리 우리는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고산증세 예방약을 3일전부터 복용했고 산에 가서도 고산증으로 고생하지는 않았다. 근데 해발 4천이 넘는 높은 산을 내려와서 충분한 휴식과 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꼬부랑 길을 내려오니 어찌 멀미를 하지 않을까 싶다.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 토할 거 같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신진대사가 멈춰 버린 듯 핏기라고는 없었다. 친구 L이 마침 침을 들고 와서 급한 나머지 가릴 것 없이 바늘 하나로 친구 모두를 사혈 했다. 나도 손을 내밀어 사혈을 했지만 정신이 들자 큰일 났다 싶었다. 소독도 하지 않은 채 바늘 하나로 다 찔렀으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찝찝한 게 영 개운치가 않았다. 그러나 할 수 없다. 운명에 맡길 수밖에. 친구의 사혈 덕분에 죽을 것 같던 몸 상태가 언제 그랜 양 멀쩡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산 전망대에서 쉬어 가기로 했던 것을 취소했다. 모두 멀미 때문에 차를 내리지 않았다. 내려도 올 때와 달리 안개가 천지를 뒤덮고 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기도 했다. 몸이 안 좋으니 아름다운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은 비경을 즐기지도 못해 아쉬웠다. 소문대로 황룡은 힘든 여행지였다. 그래서 신비함을 감추고 높은 곳에 숨어 있나 보다.

모현에서 저녁을 먹고 여장을 풀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친구들은 여태 껏 참았던 술 한 잔을 그제야 할 수가 있었다.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술은 금기라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술도 한 잔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힘든 하루를 뒤돌아 보았다. 모두 대단한 하루였다고 입을 모았다.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객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고단한 몸을 쉬었다.

'여행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키를 다녀와서  (0) 2015.04.03
태항산을 다녀와서  (0) 2013.03.29
구체구, 황룡을 다녀와서  (0) 2012.05.16
체코(프라하)  (0) 2011.06.30
폴란드(아우슈비츠 그리고 크라카우)  (0) 2011.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