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가 또 지나가고,
한 해도 이제 끝을 향해 내달린다.
12월,
늘 이 맘 때면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올해는 무엇을 향해 시작했고 무엇을 이루었는지 뒤돌아 보게 된다. 그러나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것도 거둔 게 없다. 참 무의미한 삶을 살아온 시간들이다. 다만 지루한 삶의 정체된 시간들을 밀어내고 몇 년후의 미래를 갈망했을 뿐이었다.
아이들의 공부가 올해로 끝날 줄 알았는데 작은 아이도 대학원을 가겠단다.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남편의 노고와 희생이 너무 크다. 여태껏 아이들로 인해 그렇다할 취미생활도 하지 못했다. 두 녀석 학비며 생활비 대느라 10년 세월을 팍팍한 시간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큰아이는 약간의 생활비만 주면 되고 작은 아이는 졸업하고 취직하면 좀 여유가 생길것이라 여겼는데 작은아이가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하니 몇년은 또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 벌써 남편의 긴 한숨이 느껴져 마음이 짠하다. 고생하는 남편과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틈바구니에서 불편한 마음이지만 훗날을 기약해 보자고 남편을 위로해 본다.
큰아이가 올해가 가기전에 좋은 논문 하나가 나올것이라고 한다. 세계 최고의 과학잡지에는 실리지 못해도 그래도 메이저급 잡지에는 실릴 정도가 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대견하고 장하다고 거듭거듭 칭찬을 해주었다. 어려운 와중에도 아이들로 기쁜일이 생겨 행복을 맛보기도 한다. 내년 4월 쯤이면 확실하게 결과가 나타난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듯 아이들이 공부를 좋아하니 어찌 그 꿈을 꺾을 수 있으랴. 많은 아이들이 공부가 싫어 책상 언저리에서 전전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꿈을 쫓아 끝없이 공부를 하려고 한다. 이럴 때 형편이 넉넉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 걱정없이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부모가 알아서 척척 해주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텐데. 작은 아이도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 밑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 형편에 유학까지는 보내 줄 수가 없어 안타깝다. 왜냐면 큰애가 아직 박사코스 2년이 남아 있어 생활비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빈 하늘만 쳐다본다.
아이들이 꿈을 쫓아 가는 동안 남편은 앞뒤를 돌아 볼 겨를이 없다. 12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들은 우리 가족들의 미래 꿈을 향한 질주라고 믿어 본다. 나는 꿈이 없다고 넋을 놓고 허무해 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꿈은 다름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이 내 꿈인 것이었다. 아이들의 큰 꿈이 이루어 지는 날, 나는 비로소 목적지에 도달해 모든 것 내려 놓고 마음도 몸도 자연으로 돌아가 여유로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
벌써 송년모임이 열린다고 초청장이 여기저기서 날아 왔다. 카드를 개봉하면서 한 해가 저물어감을 실감하며 화려한 12월의 불빛이 떠오른다. 캐롤송이 거리의 소음을 잠재우고 아직은 힘든 세상을 모르는 젊은 연인들은 핑크빛 미래를 약속하며 한 손에 선물을 한 손은 연인의 손을 잡고 거리의 축제를 맘껏 즐기리라. 그들을 보며 수십년 전 나를 발견한다. 그 때 작고 귀여웠던 소녀는 이제 장성한 두 아이의 엄마로 늙어가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나는 12월 어느 날 혹독하게 실감하며 내 나이 한 살을 더 쌓을 준비를 서둘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