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흥분을 조용히 가라앉일 때가 지났다. 국시를 치고 터키와 베트남을 다녀오고 그 여운으로 아직도 흥분되고 행복 몇 조각이 일상을 방해하고 있다.
터키로 향하던 날 얼마나 설레었던지 모른다. 비행기를 타고 무려 12시간이나 날아가 만난 도시가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이스탄불이었다. 하룻밤을 꼬박 뜬눈으로 이스탄불에 내렸더니 현지 시간으로 오후가 훌쩍 가고 있었다.
첫날부터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질러 삐에롯데 언덕을 오르고 터키의 케밥으로 식사를 하며 터키를 만났다. 다음 날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하루를 묵은 뒤 카파도키로 우리는 달려갔다.
카파도키아,
자연이 빚은 최고의 걸작답게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우리 앞에 펼쳐졌다. 그 장엄함과 기묘함에 말문이 막혀 그저 감탄사만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자연은 늘 그렇게 세상 곳곳에서 인간의 작은 힘을 비웃듯이 늠름하게 뿌리내리고 기다리고 있다. 카파도키아를 구석구석 쫓아가며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 보지만 기억 그 또한 한 조각 편린 일 뿐 숨 막일듯한 감동은 희미해진다. 인간이 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우리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렇게 열망하던 열기구 탑승은 궂은 날씨로 끝내 탈 수가 없었다. 전 날 열기구 사고가 생긴 탓도 있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열기구에 몸을 싣고 카파도키아의 장엄함을 보고 싶어 했다. 나 역시도 열기구는 꼭 타고 싶었다.
우리는 하얀 석회암이 층층이 작은 호수를 만들며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파묵칼레를 거쳐 콘야 그리고 안탈리아로 향했다. 유람선을 타고 코발트빛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흠뻑 적시며 터키의 봄 햇살을 받으며 행복에 겨웠다. 살랑 거리는 지중해의 바닷바람은 여행자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친구들의 꿈결 같은 여행길을 보면서 나는 새삼 감개무량해졌다. 기어이 두 친구를 데려오지 못한 서운함이 절절이 묻어나는 시간이 되었다.
에페소,
작가 고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전해지는 에페소는 돌무더기가 전해주듯 당시의 찬란한 문화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유적이었다. 가이드의 이야기는 신과 인간의 영역을 넘나드는 전설처럼 들려왔다. 돌무더기에 관한 이야기를 그렇게도 많이 읽었건만 거대한 기둥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있는 곳 에페소,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할지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그저 대책 없이 사진만 찍고 있었다.
질서 정연하지 못했던 내 사색을 책망하며 트로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오비디우스의 "일리야드"를 떠올리며 나는 트로이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랐다. 신과 인간의 전쟁이기도 했던 트로이 전쟁, 질투에서 비롯된 전쟁은 비극을 낳았다. 신화는 작은 유적으로 증명하며 여행객의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트로이는 막 올라오는 봄의 기운 위로 조용히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가이드의 신화 이야기를 빗물 속으로 흘러 보내고 있었다.
아이발락을 거쳐 이스탄불로 다시 돌아오는 날도 비는 계속 내렸다. 거대한 도시를 보기 위해 보스프러스 해협을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유람선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도 도시는 끝나지 않았다. 동서양의 경계를 이루며 지켜온 이스탄불, 동로마의 마지막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문화가 아직도 바다 위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유명한 갈라타 다리 위 카페에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맥주 한 잔으로 마음에 담았다.
젤 황홀한 여행은 돌바흐체 궁전이다. 이미 여행자의 가방은 비행기에 싣도록 준비하고 19세기 최후의 술탄왕국으로 달려갔다. 왕궁을 들어서는 순간 그 눈부신 광경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계단 하나하나는 흑단 장미목이요 기둥은 크리스털 난간 손잡이 역시 흑단 장미목이었다. 보이는 것은 금과 은 그리고 크리스털이었다. 그 화려함은 설명할 수도 없고 웅장함은 권력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힘과 권력만이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섬세한 아름다움과 여성들의 공간 하림에서 질투의 화신도 느낄 수 있었다.
돌바흐체 궁전은 어떤 어휘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공간이라기보다 신들의 공간이라면 이해가 가능하다. 이번 터키 여행은 일 년 동안 공부하느라 지친 내게 꼭 필요한 휴식이 아닐 수 없었다.
억겁의 시간을 견뎌온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한 때는 신들의 나라였던 에페소와 트로이의 유적,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스탄불 너무나 화려했던 여행이었다. 터키는 내게 숙제 같았던 여행지였다. 나는 숙제를 마무리한 것처럼 홀가분하면서도 아쉬움으로 가득한 여행이 되었다. 아직도 지중해의 코발트 물빛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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