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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케치

지금도 크리스마스 날 빵을 주나요?

by 하이디_jung 2008. 12. 24.

 

  지금도 크리스마스 이브 날 저녁 교회에선 빵을 주나요?

늘 이맘 때면 떠오르는 시린 추억 하나가 있다.

돌아가 생각하면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고 무곡에 사는 넘조는 우리반 아이들에게 이브 날 교회에 오라고 끝임없이 바람을 넣고 있었다.

넘조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간간이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 때는 교회라고는 무곡에 단 하나 밖에 없었고 부처님과 초파일만 알고 있던 시골 아이들에겐 교회라는 곳이 낯설 뿐만 아니라 자못 신비감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예수님의 성상은 곱슬머리에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낮선데다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섬광이, 무엇보다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성스러워지기도 하였던 것 같다.

어린 꼬마의 신념을 확고이 해준 또하나의 사실은 당시에 학교에서 학급문고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고전읽기를 통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숭배사상이 제법 마음에 내려 앉아 있었다.

그런 마음이, 신의 곁으로 가까히 가보고픈 마음이 넘조의 전도?에 24일 이브 날 교회에 가게 되었다.

나는 동네 6학년 언니들과 5학년 언니들께 넘조가 해주었던 예수의 탄생을 재현하는 연극 이야기와 더불어 빵을 준다는 이야기를 강조하며 꼬드겨 한무리의 방문단을 만들었다.

그 때의 시골 겨울 날씨란 지금으로 말하면 혹한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길을 나섰다.

그 무리에 춘숙이가 끼어 있었는데 아마 동네 앞에서 놀다가 엄겹결에 무리에 합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렇게 무곡에 도착하여 이브 날 펼쳐지는 어설픈 꼬맹이들의 연극과 찬송가를 따라부르고 고개숙여 숙연하게 기도까지 마치고 귀한 빵도 먹었다.

교회의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막막했다.

무곡에서 안금 골짜기까지는 십리가 훨씬 넘는 길이며 꼬맹이들이 춥고 어두운 밤길을 걷기에는 걱정스러운 길이었던지 6학년 큰언니의 친구집인 장지골에서 잤다.

이른 아침 그 댁 아버지의 쇠죽 끓이는 소리를 듣고 깨어나 아침을 먹고 가라는 어머님의 말씀에도 마다하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문제는 밤부터 내린 눈이 무릅까지 쌓였다는 것이다.

처음에 용감하게 종종걸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얼마가지 못해 천으로 된 운동화는 이내 젖어서 웅크리고 있는 작은 발은 얼어가고 있었다.

학교를 지나면서 발이 시렵고 아프다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언니들이 조금만 가자, 그러면 떼주막이 나온다며 그기서 발을 녹이고 쉬어 가면 된다고 위로했다.

떼주막은 아마도 조선시대부터 구한말을 거쳐 일제시대와 근대를 지나 불과 십여년전까지 존재 했었는데 어느 날 도로가 확장되면서 사라졌다.

많은 세월을 흘러오면서 그 옛날 나그네와 보부상들이 한 잔의 막걸리로 애환과 고된 삶을 녹여내었을 추억이 서려있는 주막이 없어진건 아쉬운 일이다.

여튼 우리는 춘숙이의 안면으로 주막에서 꽁꽁 얼었던 손과 발을 발을 녹일 수 있었다.

아마 춘숙이네와 주막집은 먼 친척이 아니었나 기억된다.

어느 정도 햇살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우리는 고통스러워하며 걸었다.

그 때는 눈도 어찌 그렇게 많이 왔을까, 무릅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가야 한다는건 당시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어떻게 걸어 왔는지 집에 도착해서 엄마품에 쓰러져 엄청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어설픈 연극을 보기위해, 아니 처음으로 산타의 모습을 보기위해, 그리고 빵 하나를 얻기위해 꼬맹이는 차후에 일어날 일들은 상상도 못하고 길을 나서는 무모함을 잊지는 않았는지...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눈처럼 하얀 그리고 시린 추억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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