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을 머금은 오후의 나른함이 한 바탕 운동으로 지친 내 어깨위에 내려 앉는다. 조금 뒤 어스럼이 몰려오면 나는 다시 길을 나선다. 언제부터 나를 위해 이토록 성실히 몸을 다듬었던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대답대신 어둠을 밟고 별을 따라 걷게 될 것이다. 가끔 나를 따라 함께 걷는 친구의 게으름에 전혀 아량곳 하지 않고 철저하게 나를 우선으로 운동을 한다.
내가 운동삼아 열심히 걷고 있는 이 길을 언제까지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왜냐면 대규모 택지조성 사업으로 이미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곧 개발될 것이라고 한다. 얕은 산등성이에 있는 묘지들은 비석대신 묘지이장을 표시한 번호표를 달고 있고, 개발 될 것을 염두에 둔 어느 욕심 많은 지주의 묘목심기는 벌써 이년전의 일이다. 어쩌다 미처 해가 지기전에 걷기라도하면 동네앞에 멋드러진 소나무를 보면서 오랜 세월 한자리에 서서 온갖 풍파를 이겨온 저 소나무는 어쩔 것인가 안타깝다. 멋진 소나무를 보면 감동하고 좋아하는 마음이라 많은 걱정이 된다.
오늘 절기상 우수이다.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논밭에 두엄을 내었는지 어릴적 기억하던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부지런한 농부의 밭갈이가 끝나고 흙을 고른 둔덕을 정갈하게 마무리를 했다. 올 가을은 맞을 수 있을지, 누렇게 출렁이는 황금물결은 볼 수가 있을지 미리 염려해 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늘을 보면 언제 나왔는지 반짝이는 별 하나 내 앞서 밝게 비친다. 보름을 지난 달은 눈썹같은 모습으로기울고 있다.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온갖 상념들이 사유를 향해 달려들지만 정작 사유의 공간엔 이미 누군가로 가득차 있다. 내 생각을 방해하고, 내 일상을 방해하고, 내 마음을 방해하고, 내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 그래서 다른 아무 것도 번민하고 사유할 수가 없다.
김수환추기경의 선종을 보면서 무엇을 욕심부리며 살겠는가,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싶다. 돌아보면 욕심부리고 살아온게 아니라 그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잠재우고 남을 위한 삶을 산다는 것은 고행이 아닐까. 김추기경의 삶처럼 오직 남을 위한 삶, 성자처럼 산다는 것은 대인이나 가능하지 우리 같은 소인은 사사로움에 집착해 자신들을 가누기도 어렵지 않을까.
걷는다는 것은 단순이 운동만을 위한 시간이 아닌가보다. 온갖 생각으로 복잡한 심사를 어둠을 벗삼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와중에 주위의 문제들도 보인다. 택지개발로인해 산책로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도 미리 걱정해 보는 것이다.
아직은 바람이 차다.
가로등 불빛은 길위에서 흩어진다.
오늘도 또박또박 걷는다.
들판으로 이어진 큰 길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