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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by 하이디_jung 2017. 2. 13.



  시절이 어수선하니 요즘 사람들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누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화를 내거나 히스테리를 부린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 모두가 미치광이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순수함으로 살아 남기란 애초에 틀렸다.
 그저께 일이다. 무슨 일로 직장 최고참에게 건의할 일이 생겨었다. 마침 night를 마친 그녀에게 얘기를 하는데 누군가 중간에 끼어들어 다짜고짜 패악질을 부리며 말을 함부로 쏟아내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내가 자기 말을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근데 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과정을 얘기하는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응급되었던 것이었다. 참을성 없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어휘 선택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패악을 부리는 것이다. 나는 황당하고 어이없어 멘털이 패닉에 빠져 버렸다. 차후, 선후는 이렀다고 얘기를 한 후에야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나는 사과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왜, 사람들은 화부터 내고 사과를 하려고 할까. 애초에 좀 진지하게 들어줄 수는 없을까.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말을 함부로 해서 상대방을 다치게 하고 상처를 준다는 것은 참 좋지 못한 행동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고 행동해도 늦지 않다. 그러면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온갖 추태는 다 보이고 사과한들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나 역시도 말을 조심하고 언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될 것이다. 살아갈수록 힘든 게 사회적 관계, 즉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처음 만나거나 낯선 사람에게는 모두가 조심을 하게 되지만 점차 친해지면서 경계도 풀리고 긴장도 풀어지면서 친하다는 핑계로 언어에 신경을 쓰지 않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한다. 최소한의 어휘 선택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농담 반 진담 반 허물이 없어지면서 우리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상처는 스스로 초래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면 그렇다. 나와 관계된다는 것은 고의든 타의든 상관이 있으니 나한테 일어나는 것이다. 어느 신앙 구절에 '모든 것은 다 내 죄요'라는 말씀처럼 나한테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하고 나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바람직할까, 말을 아끼고 필요한 말만 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직장이든 친목회든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기만 해야 하는 걸까, 말을 하지 않으면 도도하다거나 비밀이 많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참 어렵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이 다시 화재가 되었다. 작가 조지오웰의 '1984'였다. 내가 자주 응급했다. 요즘의 세상이 그 책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고, 세상은 모든 것을 민낯처럼 드러내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구석구석에서 지켜보는 CCTV는 또 다른 우리의 감시자들이다. 누구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하건 그 말은 이제 결코 비밀이 될 수 없다는 것이고 상대방을 언짢게 하고 화나게 할 뿐인 것이다.
 늦었다 싶을 때 시작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만 하도록 노력하고 웃어주기만을 노력해 보는 것도 남은 인생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시장에 봄나물이 나오는 걸 보니 봄이 저만치 오고 있는 모양이다. 나도 봄처럼 향기롭고 싱그러운 햇살 같은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의를 아름답게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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